책 제목에 영감을 받아 초등학교 입학 직후 첫 지필고사부터 대졸자 선발시험에 이르기까지 과연 몇 번의 시험을 치렀을까 세어보려 시도했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고 보니 제도권 교육의 지필고사부터 온갖 학위, 자격, 공인 어학 능력, 대기업 입사는 물론 이민 가고 싶어도 시험을 보아야 하는 세상이다. 하기야 우리 인생 자체가 시험인데 따져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지금의 밥벌이조차도 연속된 시험을 거친 결과물이 아닌가.
사회학 박사와 심리학 박사가 힘을 합쳐 시험을 주제로 책을 썼다. 시험에 관한 기억을 돌이켜보니 씁쓸한 이유는 이 책의 부제에 표현된다.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이란다. 그러면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크게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시험 공화국이 되었는지, 한국에서의 시험이 지니는 특수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찾아보고(1장), 불신과 불공정이 낳은 슬픈 자화상으로 그려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상을 돌아보며(2장), 앞으로 변화가 예견되는 세상을 위해 시험에 매몰되지 않을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3장).
저자는 우리나라 시험문화의 특징을 ‘고부담 시험(high-stakes exam)’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이해도를 점검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험 성적에 따라 상급학교 진학 또는 취업과 승진이 결정되며 심지어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이루어져 그 압박감은 최고조에 이를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에게 시험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투명성과 그로 인해 보장되는 공정성이며, 시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커녕 그 순기능에 매료되어 선발이나 자격 부여와 같은 중요한 사안일수록 시험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한다.
제도권 교육에 몸담은 필자의 경우 시험 제도와 더불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생들의 심적 신체적 피로도를 유발하는 연간 네 차례의 정기고사와 과목별 수행평가는 물론, 각종 경시대회와 전국연합 학력평가의 삼단 콤보를 어찌어찌 막아내면 시험의 끝판왕 수능이 그들을 기다린다. 해마다 바뀌고 복잡해지는 입학전형 탓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지금의 제도는 부담은 커지고 과정은 더 복잡해졌을 뿐이다. 이는 또한 곁에서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하는 학부모들을 비롯하여 사회 계층 전반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공무원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항공기조차도 조용히 날아다녀야 한다. 물론 힘들기로 말하자면 내 자식들처럼 수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 시험 제도가 곧 사회 문제의 한 축인 셈으로 그 여파가 이만저만 한 게 아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흔히 목격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전체 고졸자 가운데 약 19%라는 무시할 수 없는 인원이 졸업은 하되 학업이 부실하여 진학은 물론 취업도 못 하고, 제대로 된 직업 훈련도 받지 않은 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계층이 된다. 이들에게 가능한 선택은 군 입대 혹은 단순 일용직 등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꾸려갈 만한 역량을 갖춘 학생들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고려하면, 시험은 계층을 선별하고 잘라내는 훌륭한 도구이다. 시험의 응시 기회만이 아니라 시험을 치를 수 있기까지의 과정에 미친 외부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미 그 결과가 예견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양질의 경제인구로 흡수되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면 그 결과는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인구 절벽과 더불어 증가하는 이민 인구의 유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매년 요동치는 입시제도 역시 이 혼란의 불바다에 기름을 붓고 있다. 마치 영토가 없어 헤매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착지 한편을 내주었던 팔레스타인이 이제 핍박을 받듯, 처음 시작은 미약했던 수시모집이 공정성 훼손 요인으로 지목되자 이제는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선발 비중이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하기는 해도 소기의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시험 제도의 한계에 있다. 공부의 흥미를 제거하는 선행학습과 더불어 꼬리가 개 몸통을 흔들 듯 평가를 위한 학습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과거 학업 인구를 대량 배출하고 노동력을 대량 고용하던 시대에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이 더욱 중시되는 추세의 환경에서는 학습자의 성장과 발전이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시험 역시 이러한 흐름에 합당한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다형 지필시험은 응시자의 창의력이나 유연성은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식의 ‘반감기’라는 말처럼, 예컨대 심리학 분야의 지식은 약 7년이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반드시 정답이 있고 이를 찾아야 하는 객관식 선다형 시험은 지금까지의 정답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그 대안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찾아보는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없다면서,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고부담 시험에 매달리는 지금의 교육으로 정답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우리 기성세대는 세계로 뻗어 나갈 충분한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나아갈 길을 닦아줘야 할 의무가 있다. 소 팔고 땅 팔아 댄 돈으로 시험 만능주의에 승리하여 고관대작이 되었지만, 영혼 없는 사리사욕으로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일부 정계 인사들을 보면 젊은 층에 ‘이런 나라 물려줘서 미안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를 위해 고부담 시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드린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