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힘골프]는 골프상식이 풍부한 캐디들을 만들기 위해서 기획되었습니다. 캐디들에게 '아는 만큼 힘이 되는 골프 상식'이 될 수 있도록 잘 알려지지 않은 골프 역사부터 골프 시사 상식까지 조심스럽게 다루어 볼 예정입니다. 연재 중간에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izer101@naver.com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
골프백 속에서 가장 머리가 크고 위풍당당한 클럽, 드라이버를 우리는 여전히 ‘우드(Wood)’라고 부른다.
지금은 항공우주 소재인 카본과 티타늄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 이름 속에는 수백 년간 골퍼들의 손땀을 받아내던 ‘나무’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골프 클럽의 진화는 곧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비거리라는 욕망을 실현해온 투쟁의 역사다.
나무 샤프트의 황금기, 히코리(Hickory)의 마법
많은 이들이 과거의 골프채 하면 '감나무(Persimmon) 헤드'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클럽의 성능을 결정지었던 진짜 주인공은 샤프트, 즉 히코리(Hickory) 나무였다.
19세기 말, 골프가 근대 스포츠로 자리 잡을 무렵 대세는 북미산 히코리였다. 이전까지 사용되던 물푸레나무나 개암나무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기 일쑤였지만, 히코리는 달랐다. 단단하면서도 묘한 탄성이 있어 공을 때린 후 제자리로 돌아오는 ‘복원력’이 일품이었다.
당시 프로들은 수백 개의 히코리 막대기 중에서 휘어짐과 무게가 자신과 딱 맞는 단 하나를 찾기 위해 며칠을 보냈다.
규격화된 강도가 없던 시절, 샤프트는 기성품이 아니라 골퍼의 신체 일부와 같은 ‘맞춤형 예술품’이었다. 이 ‘히코리 시대’의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인물이 바로 골프 성인 바비 존스다. 그는 자신의 히코리 클럽 세트에 ‘캘러미티 제인(Calamity Jane)’ 같은 이름을 붙여주며 애지중지했다.
[에피소드] 바비 존스의 그녀, 서부의 총잡이 ‘캘러미티 제인’
바비 존스의 골프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파트너는 사람이 아닌 낡은 퍼터 한 자루였다. 그는 자신의 애지중지하던 퍼터에 ‘캘러미티 제인(Calamity Jan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이름은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여성 총잡이 ‘마사 제인 카나리’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그녀는 거친 서부에서 남자들도 울고 갈 만큼의 사격 실력을 뽐냈던 인물로, 그녀가 나타나면 반드시 ‘재앙(Calamity)’이 닥친다는 의미에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바비 존스가 이 거친 이름을 자신의 퍼터에 붙인 이유는 명확했다. 그린 위에서 이 퍼터를 꺼내 들면 상대방에게는 ‘재앙’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선전포고였던 셈이다. 실제로 그는 이 퍼터로 1930년 전무후무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상대 선수들에게는 수식어 그대로의 재앙을 안겨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퍼터가 당시에도 이미 구식인 히코리 샤프트의 L자형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바비 존스는 이 퍼터의 샤프트가 뒤틀릴 때마다 직접 실로 묶고 접착제를 발라가며 사용했다. 현대의 골퍼들이 수백만 원짜리 명품 퍼터를 쓰면서도 금방 질려 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바비 존스의 이 전설적인 퍼터는 단순히 박물관의 유물로 남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꿈꾸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PGA 투어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왕중왕전', 투어 챔피언십(Tour Championship)의 우승자에게는 아주 특별한 부상이 주어진다. 바로 바비 존스가 사용했던 원조 캘러미티 제인 퍼터를 실물 크기 그대로 정교하게 재현한 '순은제 레플리카 트로피'다.
사실 2005년부터 우승자에게 이 퍼터 복제품을 증정해 왔는데, 그 상징성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2017년부터는 아예 대회의 공식 트로피로 격상됐다.
재미있는 점은 2005년 이전에 우승했던 선수들에게도 소급 적용하여 이 트로피를 모두 제작해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매킬로이 같은 현대의 영웅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릴 때, 그들의 손에는 100년 전 바비 존스가 쥐었던 그 낡고 거친 '총잡이'의 영혼이 들려 있는 셈이다.
과거 히코리 샤프트 시대의 낡은 장비가 현대 골프의 가장 화려한 무대에서 '최고의 승자'를 인증하는 징표가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골프가 가진 전통의 힘이자, 우리가 장비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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