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2부. 150년 동안 깨지지 않는 기록 – 최연소 메이저 우승, 디 오픈 챔피언십 4연패 신화

  • 등록 2025.07.17 06: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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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엄격하면서도 세심한 가르침, 그리고 에어 아카데미에서의 특별한 교육 환경 속에서 영 톰 모리스의 골프 재능은 놀라운 속도로 만개했다.

 

그의 이름이 전 세계 골프계에 각인된 것은 1868년, 바로 디 오픈 챔피언십(The Open Championship)에서였다. 당시 17세 5개월 8일의 나이로 출전한 영 톰은 이 대회에서 154타라는 경이로운 스코어를 기록하며 챌린지 벨트를 품에 안았다. 이 기록은 디 오픈 역사상, 그리고 남자 골프 메이저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라는 불멸의 대기록으로, 15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골프 역사에는 영 톰 모리스처럼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발휘한 선수들이 존재한다.

 

PGA 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은 18세 6개월 9일의 찰스 코치스(Charles Kocsis, 1931년 미시간 오픈)가 가지고 있으며, 현대 골프의 아이콘 타이거 우즈(Tiger Woods)도 20세 9개월 6일에 첫 PGA 투어 우승을 거머쥐었다. 메이저 대회로 범위를 넓혀보면, 영 톰 다음으로 젊은 우승자로는 존 맥더모트(John McDermott, 19세 9개월, 1911년 U.S. 오픈)가 있으며, 타이거 우즈는 21세 3개월에 1997년 마스터스를 제패했다. 여자 골프에서도 리디아 고(Lydia Ko, 18세 4개월, 2015년 에비앙 챔피언십)와 같은 어린 챔피언들이 등장했지만, 영 톰 모리스의 17세 메이저 우승 기록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1868년 디 오픈 챔피언십은 영 톰의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 외에 또 하나의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바로 부자(父子) 라이벌전의 절정이었다. 영 톰이 우승을 차지하고, '골프의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가 그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던 것이다. 아버지를 넘어선 아들의 영광, 그리고 그 순간을 아들과 함께 빛냈던 아버지. 메이저 대회 역사상 부자가 1, 2위를 기록한 것은 이 대회가 유일무이하다.

 

스포츠에서 부자(혹은 부녀)가 모두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경우는 종종 있다.

 

농구의 르브론 제임스와 브로니 제임스, 야구의 블라디미르 게레로 시니어와 주니어, 축구의 파올로 말디니와 다니엘 말디니 등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골프에서 이처럼 최상위권에서 직접적으로 경쟁하며 나란히 선두에 오른 경우는 모리스 부자가 유일무이하여 그 드라마가 더욱 빛난다. 이 순간은 올드 톰이 아들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는 듯한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이어진 영 톰의 행보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는 1869년 프레스트윅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157타로 2연패를 달성했고, 이 대회에서는 역사적인 8번홀 166야드 홀인원까지 기록하며 그의 천재성에 방점을 찍었다. 1870년에도 프레스트윅에서 열린 대회에서 149타라는 경이로운 스코어로 3연패를 기록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파5 홀에서 두 번째 샷으로 볼을 홀에 넣어 '알바트로스(더블 이글)'를 기록하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의 장비, 즉 휘어지기 쉬운 히코리(hickory) 샤프트 클럽과 예측 불가능한 구타페르차(gutta-percha) 볼을 사용했음을 감안하면, 그의 알바트로스는 현대 골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적과 같은 샷이었다.

 

 

당시 대회 규정상 챌린지 벨트(Challenge Belt)를 3회 연속으로 우승하면 영구 소유할 수 있었기에, 영 톰 모리스는 이 벨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다. 그의 경기가 있는 곳마다 구름 떼 같은 관중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영 톰의 역동적인 플레이에 열광했다. '그 시대의 타이거 우즈'로 불릴 만큼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으며, 그는 골프 역사상 '최초의 슈퍼스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의 압도적인 기량은 골프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심지어 영 톰 모리스의 독주 때문에 1871년에는 디 오픈이 열리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대회를 주관하는 세인트앤드루스, 프레스트윅, 에든버러의 로열 블랙히스 클럽은 영 톰의 챌린지 벨트 영구 소유로 인해 새로운 우승 트로피를 마련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 문제로 1년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영 톰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1년의 공백 후 1872년, 마침내 새로운 우승 트로피인 클라렛 저그(Claret Jug)가 탄생하며 디 오픈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누가 첫 번째 클라렛 저그의 주인이 되었겠는가. 바로 영 톰 모리스였다. 그는 다시 한번 우승하며 디 오픈 4연패라는 대기록을 완성했다. 이 4연패는 오늘날까지도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전설적인 업적으로 남아있으며, 클라렛 저그의 역사 또한 영 톰 모리스의 지배적인 시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을 더욱 부각한다. 영 톰 모리스는 짧은 생애 동안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하며 골프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아로새겼다. 그의 경이로운 기록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골프의 새로운 시대를 연 거대한 발자취였다.

김대중 글로벌캐디원격평생교육원 원장 4cu@catt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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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기자

포씨유신문 발행인겸 편집인
글로벌캐디원격평생교육원 원장
전, (주)골프앤 대표이사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일본 국립 쓰쿠바대학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저서: 캐디학개론, 캐디가 알아야 할 모든 것, 골프 이 정도는 알고 치자, 인터넷 마케팅 길라잡이, 인터넷 창업 길라잡이, 인터넷 무역 길라잡이, 인터넷 무역 실무, 386세대의 인터넷 막판 뒤집기, 386세대여 인터넷으로 몸 값을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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