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1부. 골프 신동의 탄생 – 빛나는 유년기와 특별한 성장

  • 등록 2025.07.10 06: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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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톰 모리스, 본명 토머스 미첼 모리스 주니어, 그의 탄생은 스코틀랜드 골프 역사에 한 줄기 빛을 던지는 사건이었다.

 

1851년 4월 20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태어난 그는 '골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올드 톰 모리스와 낸시 베이(Nancy Bay)의 아들이었다. 그의 출생은 올드 톰이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던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1840년대 말, 올드 톰은 스코틀랜드 골프의 거장이자 자신의 스승이었던 앨런 로버트슨의 견습생으로 일했으나, 구타페르차 볼(gutta-percha ball) 사용을 둘러싼 갈등으로 로버트슨과 결별하고 1851년 프레스트윅(Prestwick)으로 이주했다. 영 톰의 탄생은 모리스 가문의 새로운 시작을 상징했으며, 이 환경 속에서 그는 골프에 둘러싸인 특별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는 프레스트윅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그린키퍼이자 클럽 및 볼 제작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프레스트윅 골프 클럽의 코스를 설계하고 관리했으며, 이는 1860년 디 오픈 챔피언십 창설의 기반이 되었다. 반면, 올드 톰이 캐디 출신으로서 맨땅에 헤딩하듯 골프계에 뛰어들어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면, 영 톰은 아버지의 명성과 후광 아래 훨씬 더 풍요롭고 전문적인 환경에서 골프를 접할 수 있었다. 영 톰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설계하고 관리하던 프레스트윅 골프 클럽에서 시간을 보냈고, 전문적인 캐디 생활보다는 아버지의 코스에서 자연스럽게 골프에 노출되었다.

 

그는 가끔 캐디로 일하며 코스를 익히기는 했지만, 이는 부수적인 경험이었을 뿐 그의 주요 초점은 오롯이 골프 기술 연마에 있었다. 이는 올드 톰이 생계를 위해 캐디 일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출발점이었다.

 

영 톰은 아버지 올드 톰의 직접적인 가르침 아래 골프의 정수를 익혔다.

 

당시 스코틀랜드에는 정식 코치 시스템이 드물었지만, 올드 톰은 세인트앤드루스와 프레스트윅에서의 방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에게 드라이버 샷, 아이언 플레이, 퍼팅 등 골프의 모든 것을 전수했다. 올드 톰은 아들의 잠재력을 알아보았고, 단순히 골프 기술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정신과 전통까지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아버지의 지도 아래 영 톰은 놀라운 재능을 빠르게 발휘했다.

 

링크스에서의 연습은 단순한 레슨이 아니었다.

 

그것은 골프의 기본기와 승리를 위한 전략을 주입하는 엄격한 훈련장이었다. 올드 톰은 골프의 복잡한 면모에 대한 비할 데 없는 지식으로 아들에게 탁월함을 요구하는 멘토였고, 영 톰은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성장했다. 프레스트윅의 12홀 코스는 바람이 세고 거친 지형으로 유명했는데, 올드 톰의 설계 철학이 반영된 이 코스는 영 톰의 샷 감각과 코스 관리 능력을 키우는 데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또한, 영 톰 모리스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정식 교육 기관에서 수학했다.

 

그는 에어 아카데미(Ayr Academy)에서 십 대 초반까지 교육을 받았다. 모리스 가문의 경제적 번영 덕분에 이들은 연간 15파운드에 달하는 비싼 사립학교 학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에어 아카데미에서 영 톰은 귀족과 부유한 사업가들의 아들들과 함께 공부하며 사회성을 길렀고, 이는 훗날 그의 골프 실력 향상과 인간관계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아버지의 동료 골퍼들과 라운드를 돌며 실전 경험을 쌓았고, 10세 무렵에는 지역 아마추어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아마추어'와 '프로' 골퍼의 개념이 오늘날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의 골프는 주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 계층의 여가 활동이었으며, 이들이 바로 '아마추어'였다. 그들은 골프를 통해 돈을 벌지 않았고, 순수한 취미와 사교를 목적으로 플레이했다. 반면 '프로' 골퍼는 골프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클럽 및 골프 볼 제작, 캐디, 또는 내기 골프 등을 통해 수입을 얻었으며, 대부분 서민 계층 출신이었다. 올드 톰 모리스 또한 앨런 로버트슨의 견습생으로 일하며 클럽과 볼을 만들고, 내기 골프를 통해 생계를 꾸렸던 대표적인 프로 골퍼였다. 영 톰 모리스는 비록 프로 골퍼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명성 덕분에 이미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지역 아마추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골프를 칠 수 있었다. 1863년 프레스트윅에서 열린 비공식 매치에서 그는 성인 아마추어 골퍼들을 상대로 놀라운 드라이브와 퍼팅을 선보이며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올드 톰의 명성 덕분에 영 톰은 일찌감치 주목받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압도적인 실력으로 아버지의 기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골프 신동'으로 거듭났다.

 

그의 혈통과 환경,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은 골프 역사상 가장 빛나는 별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김대중 글로벌캐디원격평생교육원 원장 4cu@catt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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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기자

포씨유신문 발행인겸 편집인
글로벌캐디원격평생교육원 원장
전, (주)골프앤 대표이사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일본 국립 쓰쿠바대학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저서: 캐디학개론, 캐디가 알아야 할 모든 것, 골프 이 정도는 알고 치자, 인터넷 마케팅 길라잡이, 인터넷 창업 길라잡이, 인터넷 무역 길라잡이, 인터넷 무역 실무, 386세대의 인터넷 막판 뒤집기, 386세대여 인터넷으로 몸 값을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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