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란 무엇인가. 공을 홀에 넣는 단순한 행위인가, 아니면 인간의 욕망과 품격이 얽히고설킨 드라마인가.
나는 골프 코스에 선 선수들의 손끝에서 튀는 흙먼지와 바람에 실린 긴장을 느끼며, 이 스포츠가 품은 깊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중에서도 라이더컵은 승부의 치열함과 우정의 따스함이 공존하는 무대다.
1969년 잭 니클라우스가 토니 재클린에게 건넨 ‘위대한 컨시드(Concede)’는 그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이 대회의 본질은 흔들리기도 했다. 승부의 칼날 위에서 우정이 빛나던 순간과 그 빛이 흐려진 장면들을 되짚으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라이더컵은 미국과 유럽의 골프 영웅들이 격년제로 맞붙는 대항전이다.
1926년, 브리티시오픈 전 미국과 영국 선수들의 친선 경기로 시작해, 오늘날엔 세계 정상의 12명이 3일간 혈전을 벌이는 무대가 되었다. 상금은 없고, 순금 트로피만이 승자를 기다린다. 이 대회의 이름은 영국 사업가 새뮤얼 라이더의 기증에서 왔고, 1979년부터 유럽 전체로 범위가 넓어졌다. 승부의 끝이 무승부로 끝난 적은 단 두 번, 1969년과 1989년뿐이다. 그중 1969년의 이야기는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을 낳았다.
잉글랜드 로얄버크 데일 골프 클럽. 바람이 잔디를 흔들던 그날, 잭 니클라우스와 토니 재클린은 마지막 홀에 섰다. 잭의 긴 파 퍼팅이 홀을 갈랐고, 재클린의 공은 홀에서 120cm 남짓 떨어져 있었다. 재클린이 퍼팅을 실패하면 미국의 승리였다.
그러나 잭은 뜻밖의 선택을 했다.
그는 재클린의 공을 집어 들며 말했다. “자네가 실패할 거라 생각지 않네. 하지만 실패할 기회도 주고 싶지 않아.” 이 컨시드로 경기는 16-16 무승부가 되었고, 라이더컵 최초의 타이를 기록했다. 29세의 젊은 승부사는 냉혹한 전략가로 알려져 있었다.
초반엔 상대에게 관대한 컨시드를 주고, 후반엔 이를 거부해 상대를 당혹케 하는 전술로 유명했다.
그런데 그날, 그는 친구를 위해 칼을 거두었다. 전 세계가 찬사를 보냈지만, 동료 프랭크 비어드는 “팀이 당황했다”며 씁쓸한 회고를 남겼다.
이 사건은 단순한 승부 이상의 의미를 띤다.
라이더컵은 본디 친선이 목적이었다. 상금 없이 오직 명예와 관계를 위해 싸우는 경기. 잭의 행동은 그 정신을 구현한 순간이었다. 2004년, 잭과 재클린은 이 에피소드를 기리며 플로리다에 컨세션 골프코스를 열었다. 2006년 골프다이제스트가 ‘최고의 신규 프라이빗 코스’로 선정한 이곳은 두 사람의 우정을 조각처럼 새겨놓았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이렇게 따뜻하지만은 않다.
2012년 시카고 메디나CC의 라이더컵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타이거 우즈와 프란체스코 몰리나리가 마지막 홀에서 맞섰다. 유럽팀이 이미 승점 14로 우승을 확정지은 상황. 우즈와 몰리나리는 90cm 퍼팅을 앞두고 있었다. 우즈는 컨시드를 기대했지만, 몰리나리는 침묵했다. 우즈의 퍼팅은 홀을 스치며 보기로 끝났고, 몰리나리는 파를 넣어 무승부를 만들었다.
최종 스코어는 14.5-13.5로 유럽 승리. 우즈는 “승부가 결정된 마당에 컨시드를 아낄 줄 몰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1969년의 따스함은 여기서 차가운 현실로 변했다.
더 극단적인 논란은 2015년 솔하임컵에서 터졌다. 미국의 앨리슨 리가 50cm 퍼팅을 남겼을 때, 유럽팀 수잔 페테르센과 찰리 헐이 그린을 떠났다. 리는 컨시드로 오인해 공을 집었고, 페테르센은 “컨시드가 없다”며 벌타를 주장했다. 결국 미국팀은 패배했고, 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골프 규칙은 명확하다. 상대의 사인 없이는 벌타다. 그러나 페테르센의 행동은 라이더컵과 솔하임컵의 친선 정신에 물음표를 던졌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골프란 무엇인가.
승부를 위한 냉혹한 전쟁인가, 아니면 인간의 품위를 드러내는 예술인가. 잭 니클라우스의 컨시드는 승리보다 우정을 택한 선택이었다. 그는 칼을 쥔 손을 풀고 친구의 어깨를 감쌌다. 반면, 몰리나리와 페테르센은 승부의 논리에 충실했다.
그들의 선택은 합법이었으나, 어딘가 싸늘하다. 라이더컵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바람 부는 페어웨이에서 그 답을 찾는다. 승부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승부가 누군가를 깊이 상처 입힌다면,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잭의 손끝에서 시작된 따스한 바람이 오늘도 골프의 영혼을 되살리길 바란다. 골프는 공을 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을 잇는 이야기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저자
로펌 머스트노우(Mustknow) 대표변호사
변호사 업무 외에 협상, 인문학 컬럼 작성과 강의를 하며, 팟 캐스트 '조우성변호사의 인생내공', '고전탑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