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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의 독립운동가, ‘을사오적 처단’ 계획했던 <오기호‧이기‧홍필주 선생> 선정

 

국가보훈부는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하였던 오기호(1962년 독립장), 이기(1968년 독립장), 홍필주(1990년 애국장) 선생을 ‘2026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이에 전국적 의병 봉기 등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이 격화되었다. 초기에는 일본 정부와 정계 인사에게 장서를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성토하고 대한제국의 주권 보전을 요구하는 등 외교적 대응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이후 의열투쟁으로 전환되었다.

 

오기호(1865년∼1916년) 선생은 을사늑약 강제 체결 이후 외교적 저항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 조직을 주도하여 폭탄과 저격 등을 통한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하였고, 자금 조달과 무기 구입 등을 직접 관장하였다. 이후에도 계몽운동, 실업교육, 대종교 참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독립운동을 실천하였다.

 

이기(1848년∼1909년) 선생은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대일 외교활동 이후 자신회에 참여, ‘자신회 취지서’를 작성하여 을사오적 처단이 민족 해방을 위한 정치적 행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자현장(自現狀, 스스로 출두하며 쓴 글)’을 작성하여 법정에서 의거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후에도 교육·계몽운동과 대종교 참여 등으로 독립운동의 기반 확립에 기여하였다.

 

홍필주(1857년∼1917년) 선생은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등 일본 침략에 맞선 저항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이기와 함께 도쿄에서 외교 활동을 전개하며 을사늑약 저지를 시도하고, 을사오적 처단 계획에 참여하였다. 또한, 대한자강회·대한협회 등을 조직하여 계몽·교육운동에 헌신하였다.

 

을사오적 처단 계획은 성공하지는 못하였으나, 구국운동의 방략이 외교에서 의열, 다시 정신운동으로 전환·확장되는 분기점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정부는 애국지사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오기호, 이기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홍필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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