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윌리 파크 시니어의 이름이 골프 역사에 영원히 각인된다. 그가 '골프의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와의 치열한 라이벌 구도 속에서 제1회 디 오픈 챔피언십의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당시 골프계는 두 사람의 자존심을 건 챌린지 매치(Challenge Match)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매치들은 단순한 시합이 아니라, 한 가문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거대한 드라마였다. 파크 가문의 홈 코스인 머셀버러와 모리스 가문의 세인트 앤드류스를 오가며 펼쳐진 이 매치들은 당대 최고의 흥행 카드였으며, '도박'이라는 흥미로운 요소와 함께 수많은 관중을 몰고 다니며 골프를 소수의 귀족 스포츠에서 대중적인 관람 스포츠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의 대결은 단순한 기량 경쟁을 넘어, 플레이 스타일과 골프 철학의 충돌이었다. 파크는 모리스보다 훨씬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관중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는 장거리 드라이브와 과감한 퍼팅을 즐겨했고, 이는 안정적이고 정교한 플레이를 선호했던 모리스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팬들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 1860년 10월 17일, 프레스트윅에서 열린 제1회 디 오픈 챔피언십은 골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
※본 기사는 본사와 제휴한 조세금융신문과 동일하게 게재한다. 라이벌 윌리 파크 시니어 1859년 스코틀랜드 골프계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챔피언 골퍼 앨런이 영면에 들어간 것이다. 앨런은 세인트 앤드류스의 최고 골퍼이자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프로 골퍼, 최초의 챔피언 골퍼였다. 44살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앨런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스승이자 최고의 골프 파트너였던 앨런의 장례식에서 참석해서 직접 운구를 한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스코틀랜드 골프계는 그의 타이틀인 챔피언 골퍼를 이어받을 골퍼를 뽑게 되고, 제임스 오길비 페어리를 주축으로 디 오픈 챔피언쉽이 조직된다. 바로 디 오픈의 시작이다. ‘존경할 만한 캐디(respectable caddie)’로 알려진 프로 골프 8명이 영국과 스코틀랜드 골프 클럽을 대표해서 초청되었고, 우승자에게는 챔피언 벨트(Challenge Belt)가 수여되고, 3회 연속 우승자는 우승 벨트를 영구 소장할 수 있도록 했으며, 12홀 프레스트윅 골프 클럽에서 3라운드 경쟁을 통해서 우승자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최초의 디 오픈은 압도적으로 톰에게 유리한 경기였다. 그가 만든 코스 그리고 지난 10년간 관리해온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