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힘골프]는 골프상식이 풍부한 캐디들을 만들기 위해서 기획되었습니다. 캐디들에게 '아는 만큼 힘이 되는 골프 상식'이 될 수 있도록 잘 알려지지 않은 골프 역사부터 골프 시사 상식까지 조심스럽게 다루어 볼 예정입니다. 연재 중간에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izer101@naver.com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
골프 코스
한 라운드는 18홀로 구성되어 있으나, 퍼블릭 골프장의 경우 9홀만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9홀을 두 번 도는 것으로 18홀을 채운다.
골프 코스 거리는 일반적으로 6000~7000야드로 만들어지며, 각 홀의 거리는 150~600야드로 만들어진다.
골프는 골프 룰에 따라 계속해서 스트로크를 하면서 골프 볼을 티잉구역에서 시작해서 홀컵에 넣어야만 하는 경기다. 골프는 볼이 놓인 상태 그대로 골프 볼을 치는 경기이며, 골프의 승자는 가장 적은 스트로크를 기록한 사람이 된다.
19세기 초반까지 홀 수에 대한 제한사항이 없었고, 홀 수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스코틀랜드 리스 시대에는 5홀 경기였고, 그래서 인지 골프의 인기는 그저 그랬다.
1764년부터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한 라운드를 18홀로 규정하게 되면서 세인트 앤드류스가 골프의 중심지로 변화하게 되었고, 지금도 골프의 고향으로 일컬어진다.
스코틀랜드 해안가에서 시작했던 골프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 폭 넓게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스코틀랜드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유명한 골프코스가 생겨났다.
1770년대 초, 영국 노예 상인들이 시에라리온(Sierra Leone) 공화국 번스 섬(Bunce Island)에 아프리카 최초의 골프 코스가 만들어 졌으며, 1829년 인도 콜카타에 로열 칼커타 골프 클럽(the Royal Calcutta Golf Club)을 만들었는데, 로열 칼커타 골프 클럽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클럽이자 대영제국 최초의 외부 골프 클럽[1]이다.
[1]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 생긴 두 번째로 오래된 골프장이며,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은 1766년 영국 런던에 만들어진 The Royal Blackheath이다. The Royal Calcutta Golf Club은 조지 5세와 매리 여왕이 1911년 Calcutta에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클럽에 “Royal”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였으며, 아시아의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장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Source: Wikipedia.org |
1844년에는 영국 공직자들이 골프를 칠 수 있도록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모리셔스 섬에 모리셔스 짐카나 클럽(Mauritius Gymkhana Club)[2}을 만들었다.
[2] Source: mauritiusattractions.com |
1856년 유럽 최초로 프랑스에 파우 골프 클럽(the Pau Golf Club)이 만들어진다.
Pau는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 만들어진 골프장 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골프장이다. 스코틀랜드 골프역사에서 스코틀랜드 지역이외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골프장은 로얄 블랙히스(the Royal Blackheath)라는 기록이 있는데, 로얄블랙히스는 18홀 코스가 원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골프장을 프랑스의 파우 골프 클럽이라고 한다.
아래 그림은 1910년에 그려진 파우 골프장의 지도로 현재에도 그 모습 그대로다.
파우 골프 클럽의 첫 번째 코스는 9홀로 구성되었고, 1860년에 12홀로 확장하였으며, 다시 1875년 18홀이 추가되었고, 1877년에 하단 그림과 같이 레이디 코스가 만들어졌다.
조선골프소사에 의하면, 1900년으로 고종 황실의 고문으로 온 영국인들이 함경남도 원산항 세관구내에 6홀의 코스를 만들어 놓고 골프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가 한국에 골프 코스가 소개된 첫 해라고 할 수 있다.
1921년 조선철도국 산하 조선호텔부속시설로 효창원 내에 9홀 규모의 골프코스로 개장했으나 9홀 중에서 7홀만 사용했다고 한다. 이 당시 코스 밖으로 날아간 오비(Out Of Bounce) 볼로 인해 골퍼와 행인 간에 다툼도 잦았다고 한다.
효창원에 있던 골프 코스는 4년 뒤인 1924년 청량리로 이전하면서 16홀 코스를 재 개장하고 사단법인 경성골프클럽이 설립되었고, 1925년에 제1회 전(全)조선골프선수권 대회를 개최하였다.
193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 정규 18홀인 서울컨트리클럽이 현재 어린이대공원 군자리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골프의 선각자 또는 후원자라고 칭하는 사람은 영친왕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 골프 코스와 왕릉은 많은 연관관계를 갖게 되는데, 용산구에 있던 효창원이 효창원골프장(1921년), 성북구에 있던 의릉이 청량리골프장(1924년), 광진구 유릉이 군자리골프장(1929년), 고양시에 있던 서삼릉이 한양골프장(1964년), 뉴코리아골프장(1966년)으로, 노원구에 있던 태강릉이 태릉골프장(1966년)이 되었다.[3]
[3] 조선왕조의 무덤은 종류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분류된다. 능은 왕과 왕비 그리고 황제와 황후의 무덤이며,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그리고 왕의 사친(부모) 무덤이며, 묘는 나머지 왕족(대군, 군, 공주, 옹주, 후궁)과 폐왕의 무덤이다. 조선왕조의 무덤은 능이 42기, 원이 13기, 묘가 64기로 총 119기에 이른다. |
영친왕은 직접 유릉 부지를 무상으로 대여하고 골프장 건설 투자비까지 쾌척해서 군자리 코스 만들도록 하였다.
아래 그림이 코스 길이 6km, 18홀의 서울컨트리클럽의 시작이 바로 군자리 코스다.
한국남자골프의 첫 스타는 연덕춘이다, 연덕춘은 1916년 뚝섬에서 태어났지만, 화재로 인해 군자리 골프장이 있던 화양리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 군자리 코스에서 캐디 마스터실 보조로 일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고, 후에 일본 후지사와 컨트리 클럽에서 골프 수업을 받아 일본 프로자격을 획득한 후 1941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 오픈에서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