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는 묘한 게임이다. 공 하나를 쫓아 끝없이 걷는다. 바람과 맞서며 홀을 겨냥한다. 이 단순한 놀이에 재미난 규칙이 있다. 경기 중 공을 손으로 만질 수 없다. 티잉 구역에서 공을 올릴 때나 퍼팅 그린에서 마무리할 때만 손을 댄다. 그 외엔 손을 뻗으면 페널티가 온다. 이 간단한 룰이 골프의 핵심이다.
이 규칙은 먼 옛날에서 왔다. 18세기 스코틀랜드다. 황량한 들판에서 귀족들이 공을 굴리며 놀았다. 그때 공을 손으로 안 만지는 건 정직을 뜻했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마음이었다. 상대를 속이지 않는 약속이었다. 그래서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란 이름을 얻었다. 1744년, 첫 규정집에 이 정신이 담겼다. 손을 멀리하는 습관이 골프의 품격을 세웠다.
시간은 흘렀다. 골프는 대중 속으로 퍼졌다. 2019년엔 룰이 크게 바뀌었다. 플래그 스틱을 꽂은 채 퍼팅해도 된다. 공을 떨어뜨리는 높이도 달라졌다. 하지만 이 룰은 그대로다. 공은 손으로 만지지 않는다. 코스에서 캐디로 일하며 자주 본다. 골퍼가 벙커에서 공을 꺼내려 손을 뻗는다. 나는 얼른 클럽을 내민다. “이걸로 하세요.” 웃으며 말한다. 마음속엔 뿌듯함이 스민다. 이 오래된 약속을 지키는 데 내가 보탰다.
이 룰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공을 손으로 안 만지는 건 단순한 규제가 아니다. 나를 다스리는 일이다. 상대를 믿는 마음이다. 코스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공을 본다. 골프가 묻는다. “너는 얼마나 정직한가?” 이 질문은 오늘에도 살아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믿는다. 믿음을 바란다. 골프는 그 연습장이다. 공을 손으로 안 만지는 작은 행동이 신뢰를 키운다. 바람은 코스를 휘젓고, 공은 홀을 향한다.
캐디에겐 이 룰이 각별하다. 골퍼가 실수하려 하면 눈치를 준다. “룰이에요.” 한마디면 된다. 골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나는 조력자가 아니다. 골프의 정신을 잇는 사람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신뢰가 내 손끝을 거쳐 흐른다. 과거는 전통을 새기고, 현재는 약속을 잇는다. 요즘 대회에서도 이 룰은 엄격하다. 기술이 발전해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골프는 깊다. 공 하나로 벌이는 게임이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정직은 뭘까. 신뢰는 어디서 오나. 코스 위에서 공을 보며 생각한다. 이 룰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캐디로 일하며 매일 느낀다. 이 작은 깨달음이 골프의 참맛이다. 공을 손으로 못 만지는 단순함 속에 삶의 이야기가 있다. 정직은 침묵으로 빛나고, 신뢰는 행동으로 증명된다.
홀마다 새겨지는 건 점수가 아니라, 사람됨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