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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 87] 창피하지만, 일단 해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겪는 굴욕감의 극복 지침서

 

아마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을 테지만 원로 코미디언 전유성 씨가 했던 유명한(?) 말을 떠올려 본다. 잠깐의 굴욕을 참으면 인생이 행복하다. 굴욕은 본래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을 뜻하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 의미가 옅어져 ’창피하다‘와 거의 비슷하게 쓰이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무언가 창피함을 느낀다면, 이는 미래가 보내는 성공의 신호라고 말하는 저자 나카가와 료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자신의 굴레를 벗어나 유명 카피라이터 겸 광고 기획자로 변모한 자신의 인생 경험을 공유한다.

 

고민되는 일을 만날 때마다 창피한 쪽을 택하기로 했다는 그는 창피함을 ’꼴사나운 일‘도 할 수 있는 용기인 동시에 소리 없이 기회를 빼앗는 괴물이라는 양면성을 지적한다. 창피함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태를 뜻하기 때문에 창의성의 다른 말로도 표현되며 몇 살을 먹든 창피를 무릅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떻게든 100세는 살게 되기 때문에 한 가지 직업과 기술만으로는 지속하기 어려운 시대이며, 해본 적 없는 일에도 도전해야만 하는 상황이 늘어나리라 전망한다.

 

감정의 동물인 사람이 그런 난감한 상황을 만났을 때 ’창피함‘을 외면하기란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창피함에 면역을 갖춘 사람만이 더 많은 일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20년 전, 나는 잘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낯선 영역의 직업으로 들어서겠노라고 깜짝 발표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민한 성격의 나와는 맞지 않는 일에 시달리는 것 같았고, 이대로 버티다가는 스트레스로 몸이 성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부모 형제는 물론 친구들까지 물살 거센 강물 한가운데서 말을 갈아타다 실패하면 급류에 떠내려간다며 너무나 위험하다고 만류했다.

 

무언가 어렵고 힘든 일에 도전해보는 일이 매우 드물었던 평범한 사람이 보살펴야 할 부모와 식솔들까지 둔 입장에서 그것도 직장이 아닌 직업 자체를 바꿔보겠다니 무모하게 들렸을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을 때 주변의 반응을 살펴보면, 정말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유일하게 나를 응원해준 사람은 내 옆지기 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당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더라면 자신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감정에 실행력을 빼앗겨 두고두고 자신을 혐오하며 살았을 것 같다. 아무리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마저 잃어서는 안 되겠다.

 

도전이라는 선택을 하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경험이라는 성과가 따라온다. 반대로 포기를 택하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75쪽)

 

사실 창피함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감정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흔한 소재처럼 창피함의 트라우마로 한 번 꺾인 용기는 다시 불러오기가 쉽지 않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세계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기 얼마나 어려우면 창피함을 극복했을 때 인간 승리라는 말을 할까?

 

빼앗긴 용기를 되찾는 방법으로 저자는 첫째, 창피함을 겪은 당시의 나에게 편지를 적어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창피 필터>를 벗겨내면 당시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둘째, 창피했던 경험을 우스갯소리로 만들어 웃어넘기면 당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실패담을 공유함으로써 가장 빨리 타인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 생긴 마음의 상처는 쓰리고 아프지만, 잘만 극복하면 두둑한 군살이 되어 어지간한 일에는 무덤덤하게 대응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 신체 곳곳이 아프고 기능이 떨어지는 대신, 우리는 세월의 보상을 어느 정도 받게 되니 그렇게 섭섭하게 여길 일만은 아닌 듯하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으로는 5장 ’기회를 만들고 나를 바꾸는 창피함 극복 솔루션 50‘에 제시된 사례를 통해 자신의 창피했던 과거 모습을 돌이켜 보고 개선안을 찾는 것이다.

 

비록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이제부터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 상대방에게 적이 아님을 밝혀 신뢰와 우호를 나타내보기로 한다거나, 껄끄러운 상대가 나를 외면하거나 무시하더라도 먼저 인사를 건네어 상대방도 조금씩 마음을 열게 한다거나, 회식 자리에서 구석에 새침하게 앉아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기보다는 가운데에 앉아 좌우 앞 세 방향으로 대화 상대를 고른다거나, 처음 보는 얼굴이 많은 모임 자리에서 어색하게 굴지 말고 이왕 참여했으니 새로운 친구 여럿을 만들고 가자는 목표 의식 등이 좋은 예이다.

 

창피함은 빨리 투자할수록 수익도 높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대신해 창피함을 미리 투자해놓으면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적극적 선택을 고르기 쉬운 체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창피함에 대한 소득은 지금 당장 체감하기 어렵지만, 미래의 나에게는 분명 큰 자산이 된다. (161쪽)

 

앞으로의 인생에서 퇴직하든 전업하든 지금의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시기는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 가서 창피함에 위축되지 말고 지금부터 조금씩 마음의 군살을 키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창피함을 극복하여 행복 지수를 올리고,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데에서 해방되고, 이상적인 자아라는 저주에서 풀려나길 바라본다. 창피함을 극복하는 내공이 쌓이면 생각만 많고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의 고민거리가 살짝 가벼워질 것 같다.

 

포씨유신문 유선종 컬럼리스트 |

프로필 사진
유선종

현, 서울 우신고등학교 영어과 교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신촌 토스트마스터즈 클럽회장 역임
숙명여대 TESOL대학원 9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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