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자리에서 단 한 차례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었을 뿐, 수년간 별다른 교류도 없던 사람이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몸에 그렇게 좋은 건강 보조식품을 소개할 테니 20분만 허락해 달라 부탁한다면? 누구라도 이런 상황을 호의적으로 받아넘기기란 매우 쉽지 않을 것이다. 십중팔구 ‘그’로부터 자신보다는 호주머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약장수’라는 인상을 받을 테고 필자 역시 그러한 생각에 더 이상의 대화를 흔쾌히(?) 거절하고 말았다. ‘그’는 필자를 상대로 이득을 취할 ‘아이디어’만 있었을 뿐, 그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명분이나 친분을 쌓아두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수사법적 수단인 logos(논리적 구조), ethos(인격과 품성), pathos(감정적 유대)를 활용하여 주장을 뒷받침했어야 한다. 그는 뛰어난 약효와 안전성을 부각한 로고스만 호소하였을 뿐, 서로 알고 지내며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에토스와 약효의 경험담을 공유하여 공감을 일으키는 파토스를 갖추지 못했다. 그 결과 돌아오는 것은 ‘날 언제 봤다고 어디서 약을 팔아?’라는 반발뿐이다. 지인을 상대로 다단계 약을 팔든, 거창한 사
세상은 왜 우리를 아프게 하는가? 우리 주변의 산만함과 왜곡, 괴상한 색상과 소음 등이 우리 마음속 치유 작용을 자극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우리를 치유할 힘을 지니지 않았을까? ‘힐링 스페이스’의 저자는 자신의 질문에 놀랍도록 풍부한 몸과 마음, 인식과 장소의 관계에 관한 연구로 화답하고 있다. 저자는 감각과 감성, 면역체계 사이의 복잡한 작동 관계를 밝혀주는 발견물 속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그 첫 사례는 1980년대에 유려한 풍광을 갖춘 병원의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빨리 치유됨을 발견한 연구자의 이야기다. 어떻게 좋은 경관이 치유를 가속할까? 저자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디즈니 놀이공원, 프랭크 게리 센터, 미로 정원 등 감각의 신경생물학을 탐구하는 일련의 장소와 상황을 통해 주변 환경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유발 또는 감소시키고 불안을 유도하거나 평온을 심어주는가를 탐구한다. 물리적 공간이 인간을 치유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제시하며 저자는 앞날이 매우 밝은 신경건축학 분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도입부에서는 환경과 치유 사이의 연계성을 탐구하는 연구의 소개를 시작으로 감각의 작동방식과 신체 기관과의 상호작용을 알려주는 생리학적 용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도모하다. 지금보다 더 세상 물정에 어수룩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제법 규모와 형식을 갖춘 직장인 영어공부 모임에서 결혼제도를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만만치 않은 영어 구사력과 탄탄한 논거로 어쭙잖은 상대는 당차게 물리치는 모습의 한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던 중, 기회를 보아 차 한잔의 대화를 제안했더니 흔쾌히 수락한다. 결혼이란 개인의 선택이기는 하나 두 집안 간의 새로운 만남이니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필자의 의견과는 달리, 이 동년배 여성의 발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네 가게에서 생필품을 사더라도 유통기한 제조원 영양성분표를 따져보기 마련인데 하물며 그토록 중차대한 인륜지대사를 결정하려면 상대와 동거 기간을 가져보고 난 후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이 당찬 여대 졸업생의 주장을 딱히 반박하지 못하고 어물쩍 긍정으로 넘어가고 말았지만, 아무리 동시대를 살더라도 외형적 매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시대를 앞서가던 그의 생각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자신을 발견하였다. 20년도 더 지난 오늘날이야 동거 후 결혼이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추세이지만 당시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실크 스타킹을 가질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가난한 여공도 그 스타킹을 신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대표적인 이론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대중의 삶을 향상하는 자본주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가장 큰 번영을 이룬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황무지에서 400년 만에 세계 최고의 부를 일궜다. 오늘날 미국은 자국 통화를 기준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국민의 생활 수준 역시 노르웨이, 카타르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각국에서 이민자들이 ‘기회의 땅’ 미국으로 몰려든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이처럼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번영을 이룬 요인은 무엇일까. 이 해묵은 질문에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과 이코노미스트 저널리스트 에이드리언 울드리지가 쓴 이 책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에서는 ‘창조적 파괴’라는 답을 내놓았다. 창조적 파괴란 슘페터가 1940년대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생산성 향상 과정을 의미한다. 미국은 전통산업의 파괴가 창조의 대가임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
등에 지면 짐이고 안으면 사랑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전통 또는 풍습을 핑계로 지금까지 남자들은 숨 막히고, 제한적이며 파괴적인 ‘남자다움’ 연기에 몰입하도록 윗세대로부터 강요받아왔다. 남에게 나약한 모습과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여자처럼) 아파도 울면 안 된다. 남의 도움 얻을 생각 말고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남들 앞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움직여라. 왜냐고? 너는 남자이니까. 호주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태어나 눈을 뜰 때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남자다워지려는 연기가 우리 주변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면서 ‘맨박스’로 명명한 남자다움의 신화를 풀어헤친다. 이 낯설고 끔찍한 시대에 남자다움에 대하여 수많은 글을 쓰며 자살 유행, 가정 폭력, 음란물과 여성 혐오뿐만 아니라 남성 간의 우정, 아버지 노릇 하기,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 맺기 등을 연구 조사하며 많은 세월을 보낸 그는, 이 과정에서 ‘남자다움’의 의미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체 3부 11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부는 남자다움을 배운 남자들, 즉 나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울면 안 되는 소년들, 과용 혹은 오용되는 음란물의 오해 및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을 다룬다. 각종 통계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