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Part 1. 역사 제1장 골프 및 캐디 유래 제2장 현대 골프 역사 제3장 현대 캐디 역사 Part 2. 골프코스 Part 3. 골프클럽 Part 4. 골프 및 관련 용어 Part 5. 골프 룰: 구제방법과 페널티 Part 6. 캐디생활과 안전
[신입캐디입문]은 캐디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길라잡이입니다. 지난 15년간 골프장에서 캐디로, 마샬로, 교육자로 배운 모든 것들을 집대성해서 신입캐디가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서 캐디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배우고 나아가 멋진 전문가 캐디로 존중받기를 기원합니다. - 이동규 기자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캐디교육은 이제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캐디가 되기 위해 공부할 수 있는 방법들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가운데 신입캐디들이 필드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 가를 보다 자세하게 기록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신입캐디입문]이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신입캐디 나아가 일반 골퍼들에게도 필요한 글을 쓰겠습니다. - 김대중 기자 |
지난 시간에 이어 현대 골프 역사에 관해서 알아 보자.
일명 스틱 앤 볼(Stick and Ball), 막대기와 볼을 이용한 운동 경기에서 골프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도록 만든 곳이 바로 스코틀랜드다.
골프에 홀의 개념을 도입하고, 팀 스포츠를 개인 스포츠로 만들었다.
골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책 ‘The Account Book of Sir John Foulis of Ravelston 1671-1707’ 내용 중에 ‘1672년 3월 2일 스코틀랜드 이스트 로디안에서 골프 경기가 열렸다’라는 기록이 현존하는 현대 골프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빠른 기록이며, 이 책 속에 ‘1567년 메리 여왕이 골프 경기를 머슬버러 링크스에서 골프 경기가 개최되었다’는 문장으로 인해 기네스 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골프 코스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후 1552년 해밀턴 대주교가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에서 골프를 칠 권리에 대한 서명이 발견되면서 가장 오래 된 골프 코스의 영예는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로 넘어갔다.
세인트 앤드류스를 골프의 고향(Home of Golf)라고 부른다.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현대 골프에 관한 모든 것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톰 모리스에 의해서다. (톰 모리스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을 참고하기 바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토너먼트 The Open은 어떻게 열리게 되었을까?
디 오픈의 역사는 현대 골프 대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60년 10월 17일 세계 최초로 기록된 골프 토너먼트가 열릴 때까지 골프 코스는 12홀이었다.
1860년에 프레스트윅에서 ‘General Golf Tournament for Scotland’라는 대회가 있었는데, 디 오픈은 당시 8명의 프로들이 클럽을 대표해서 출전하게 된다. 올드 톰 모리스, 로버트 앤드류, 윌리 파크 시니어, 윌리엄 스틸과 알렉산더 스미스, 찰리 헌터, 대니얼 브라운, 앤드류 스트래쓰 이렇게 8명의 프로가 출전해서 앨런 로버슨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경기를 치렀다.
앨런의 후계자였고, 1회 대회가 치러진 프레스트 윅 코스를 설계했던 올드 톰 모리스가 당연히 초대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윌리 파크 시니어에게 2타차로 우승을 넘겨 주었다.
재밌는 것은 첫 해 경기가 끝난 후 아마추어(당시 귀족)들이 프로의 경기를 보고 나서 프로의 실력이 그닥 자신들 아마추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져서 한번 프로와 해 볼만 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져서 바로 다음 해부터 프로와 아마추어가 실력만 된다면 출전을 하여 서로의 벽없이 실력을 겨루는 대회로 바뀌었다.
여기서 아마추어에게도 대회 문호가 개방 되었다는 의미에서 The Open대회로 명명하게 된다.
골프가 특권층 귀족층만을 위한 경기라는 인식은 1900년대 초반까지 계속 되었으며 1913년 US Open을 기점으로 특권층의 경기에서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 많은 스코틀랜드(Scotland) 골프 선수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US오픈에 참가하고 우승을 했던 반면, 디 오픈은 여전히 스코틀랜드나 영국 선수들만 참가하는 로컬 대회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 선수가 US오픈이 아닌 The Open에 참가하게 된 이유가 있다.
미국 선수들의 디 오픈 출전 배경에는 US오픈을 포함한 미국 대회 트로피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에 불만을 느꼈던 미국 스포츠 주간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가 뒤에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티드’는 구독자들의 기부금을 모아 12명의 미국 선수들을 영국으로 보내면서 미국 선수가 디 오픈을 우승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계획은 성공했고, 그 이후 1933년까지 미국 선수들이 The Open을 휩쓸었다.
하지만 1946년 당시 많은 미국 선수들이 디오픈 대회 참가를 꺼렸다고 한다. 이유인 즉 미국 대회가 상금이 커져가자 미국 선수들은 스코틀랜드까지 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여행 경비가 아까울 뿐만 아니라, 예선과 대회 모두 스코틀랜드에서 치러야 하기 때문에 몇 주 동안 미국을 떠나는 것을 버거워했던 선수들도 많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디 오픈을 살린 골퍼가 바로 아놀드 파머였다.
아놀드 파머는 “디 오픈(The Open)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는 챔피언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대부분의 미국 선수들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당대 미국의 최고 골프 스타였던 아놀드 파머의 말은 곧 법과 다름없었고, 그해부터 모든 골퍼들이 디 오픈을 세계적 메이저 대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디 오픈의 개최지 ‘프레스트윅 클럽’은 더 이상 디오픈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었고 오늘날 익숙한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 등 새로운 개최지들을 찾아 정착했다.
기록에 의하면, 1870년 세인트 앤드류스에 등록된 21명의 캐디 중에 3명이 디오픈 우승자다. 1873년 톰 키드, 1876년 밥 마틴, 1883년 윌리 퍼니. 아직까지 디오픈 6회 우승이라는 기록이 깨지지 않는 해리 바든 역시도 캐디 출신이다. 초기 캐디들은 코스 관리를 도왔으며 1890년에 이르러 세인트 앤드류스의 캐디들의 노력으로 현대 골프의 혁신적 모습인 골프백을 고안함으로 인해서 골프 클럽을 핸들링하기 쉬워졌다.
잭 니클라우스는 1966년 디 오픈에서 우승을 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1)을 기록하였고, 타이거 우즈도 2000년 디 오픈에서 우승하며 역대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기록하며 골프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1) 커리어 그랜드 슬램(Career Grand slam) : '4대 메이져 대회', 디 오픈(THE OPEN), US OPEN, US PGA, US MASTERS 각 대회에서 1년 내에 우승이 아닌 시즌 상관 없이 모두 우승한 것을 이야기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