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태어나고 무공해 완전연소 소각로에서 생을 마감하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보듯, 삶과 죽음조차 단 하루도 문명의 영향을 비켜 갈 수 없는 우리는 지금 첨단 기술의 발달로 삶과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포스트 휴먼(Post Human) 시대에 살고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 기술 발전의 끝은 어디까지이며 인류에게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크게 기술의 발전으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인간의 조건(1부), 기계와 인간이 서로 공존할 가능성(2부), 미디어와 인간 사이의 관계 재정립(3부)으로 범주를 나누고 각각 세 가지씩 흥미로운 질문과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죽음’도 기술로 차단할 수 있는가
; 과학 기술이 인간의 죽음에 개입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그 변화의 의미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한 존재인가
; 인간만이 우월한 존재라는 고정관념 변화, 인간과 기계의 관계성
기술은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가
; 인간과 기술의 균형적 관계 복원을 찾아가는 방법
힘든 노동은 기계가, 인간은 자유로운 여가를?
; 노동과 여가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
기술로 인간의 도덕성도 향상시킬 수 있는가
; 기술과 도덕성 사이의 적절성, 정당성 관계
과학은 인간도 ‘제작’할 수 있는가
; 제작의 대상이 되어버린 포스트 휴먼 시대에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관계를 대신할 것인가
; 미디어 발전이 가져온 사회적 현상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에 가져온 변화
빅 데이터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 가치 중심적인 데이터 활용과 관리에 관한 질문
가상현실, 세계는 진짜 존재하는가
; 정교해진 가상현실이 인류의 마지막 플랫폼이 될 것인가
질문마다 주로 영화와 문학작품을 소개하며 위와 같이 질문하게 된 배경 지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큰 담론에서는 견해를 같이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태도를 보이는 철학자들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한 가지 질문에 다양한 시각의 답변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각 챕터의 말미마다 영화의 등장인물끼리 가상의 인터뷰를 갖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시각의 차이점을 파악하기 쉽게 하였다.
아홉 개 챕터마다 함께 보면 좋은 영화로 추천된 3가지와 본문에 예시된 영화들을 다 합치면 39편에 이른다. 나름 영화 좀 본다는 애호가로서 반가운 마음에 세어보니 다행스럽게도 절반 이상은 관람하였다. 평소 문화적 배경의 이해를 통한 어학 학습을 강조해 왔는데 그 혜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들 기술력 자체는 도덕이나 윤리가 없다고 말한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중요하며,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생활이 더욱 편리해지거나 기술의 노예가 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간 본성에 미칠 영향, 그로 인한 생활의 변화, 무엇이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기술인지를 묻는 진지한 철학적 질문과 답변이다.
이 책에 제시되는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와 저작들은 미래 기술이 적용된 후 변화될 환경을 예측할 수 있는 훌륭한 시뮬레이션이 되어 준다. 이 책은 상상력이란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재능인 동시에 알 수 없는 미래를 풀어가는 판도라의 상자 열쇠가 되고 여기에 기술력이 더해지면 실로 인간의 일상에 상상 이상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며, 상상력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으므로 반드시 실행 이후에 다가올 결과를 예측하도록 더더욱 진지한 가치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잘 제시된 철학자들의 관점과 영화를 참고하면 위에 나열한 아홉 가지 질문에 대한 각각의 답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철학이야 워낙 문외한이라 그렇다 치고, 간략히 소개되었지만 관람하지 못한 영화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소개 영상과 개요 정도만 파악해도 도움이 된다. 필자의 자녀가 그랬듯 굳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기왕에 받을 충격이라도 난데없이 한 대 얻어맞는 것보다는 알고 맞는 게 훨씬 덜 아프다는 ‘몸빵의 법칙’을 믿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