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지금의 20대 계층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정치 사회의식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분석 보고서에 저자가 불평등 세습에 관해 2017년에 작성한 글을 엮고, 기존 연구와 통계청, 고용노동부의 통계 자료 및 기관에서 만든 원시 자료를 가공 분석한 것이다. 다양한 형태, 상세한 수치의 그래프와 도표를 수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았다.
1장. 20대가 진입하는 노동시장의 특성
부모 세대의 소득 불평등이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핵심경로는 자녀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 당시 임금격차(처음 취업했을 때의 임금소득의 차이)에 있다. 100인 이상 중소기업 취업자 초봉을 100으로 할 때 대졸 취업자 초봉은 159, 25년 장기 근속할 경우 194 대 340으로 벌어진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은 번듯한 일자리, 즉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정규직, 공무원을 희망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일자리의 양은 적지 않으나 번듯하고 괜찮은 일자리 창출이 적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며 이것이 기를 쓰고 명문대에 진학 하려는 이유이다. 취업 시장은 서열 높은 대학 졸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대규모 사업체, 상용직 및 정규직을 더 많이 차지하며 결국 대학 서열에 따른 임금격차는 곧 일자리의 격차를 의미한다. 단군 이래 가장 공부를 많이 하였다는 20대는 1차 노동시장 진입 인원의 약 70%가 명문대 및 상위권 대학 입학자들이며, 나머지 30%를 놓고 비명문대 출신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최악의 수준이다.
2장. 2010년 이후 20대가 노동시장 진입 당시 겪는 경험의 변화
가장 큰 특징은 번듯한,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서울 4년제 대졸자의 취업시장 여건이 크게 악화되어 취업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소위 문과 위주의 경영, 회계, 사무 관련 직종이 가장 심하고 대신 헬스케어, 사회복지, 교육 등 고만고만한 서비스업의 인력 수요가 빈자리를 채웠다. 기업의 고부가가치-고비용 인력 수요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번듯한 일자리에 대한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추상적이고 루틴화하기 힘든 업무를 수행하며 IT 기술 발전의 영향을 덜 받는 관리직, 전문직, 기술직과 기계로 대체하기 어려운 경비직, 요식업, 청소업, 대인 돌봄서비스 등의 저숙련 서비스업 두 직종에서 지난 30년간 가장 빠르게 취업자 수가 증가하였다.
3장. 교육은 세습 중산층 지위를 유지하는 불평등 제조기.
20대 인구 취업시장의 중심부는 서울 소재 명문대가, 반주변부는 서울 수도권 4년제 및 지방 거점 국립대가, 나머지 주변부는 지방대생과 고졸자들이 차지한다. 일자리에도 현대판 성골 진골 육두품이 적용된다. 지방 고용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괜찮은 일자리 부족이며, 양질의 일자리가 있고 제조업이 활성화되면 실업률이나 고용률 등 양적 지표가 개선될 것이다. 81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던 촛불 정부의 출범에도 20대를 위한 공공 일자리는 늘지 않았고 이는 일자리 정책이 실제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연간 비진학 고등학교 졸업자 10만여 명 가운데 특성화고 졸업자를 제외한 8만여 명 이상은 일반계고 졸업 미취업자로서, 별다른 직업 교육도 못 받고 기술 경력을 쌓을 일자리도 갖지 못한 사각지대에 놓인다. 지방대생과 고졸자는 근로빈곤층 (일은 하지만 소득이 워낙 낮아 가난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의 주공급원으로, 이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청년 기본소득제의 도입이 절실하다. 이를 세금 낭비나 포퓰리즘으로 이해하는 계층도 문제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자신만의 입지를 굳히려는 일부 정치인들은 더욱 문제다.
4장. 세습 중산층의 테두리인 지방 소재 대학생과 고졸자 논의.
90년대생에게 번듯한 일자리 획득에 필요한 학력, 즉 좋은 대학으로의 진출 기회가 이전보다 훨씬 불평등하게 주어지고, 그 기회 자체도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및 학력까지 큰 영향을 받아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복합적인 불평등을 경험한다. 사회 전반의 하부구조가 서울에 집중되는 것처럼 교육계 역시 일부 명문고에 대학 진학률이 편중된다. 학력격차는 중학교 때부터 본격화되며 특히 수학 과목은 부모의 재력 여부와 직결된다. 부모의 학력 소득이 자녀의 성과와 밀접할수록 높은 값을 갖는 ‘개천용지수’로 보면 기회 불평등도가 가장 큰 과목은 영어이고 수학은 약간 작은 정도이다. 자녀의 노력 수준과 아버지의 학력은 정비례하며 부모가 고소득일수록 자녀의 자기학습 시간이 늘어난다. 노력 수준도 계층에 따라 뚜렷하게 나뉘며, 비인지적 능력도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영화 ‘친구’에서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질문에 ‘즈그 아부지 통이라예’ 라는 대사가 곧 현실이 되었다. 결국, 사회 계급 간에 일종의 다중격차가 발생하면서 사회 이동성을 가로막고 있다.
5장. 결혼과 주택 구입에서 나타나는 계층 분화 양상 분석.
중산층에서 같은 계층끼리 결혼하는 동류혼이 늘어났으며 이는 결혼이 가족 단위의 계급 재생산에 핵심임을 의미한다. 4인 단위 핵가족을 꾸리는 자체가 울타리 안에 있는 중산층의 특권적 행위가 되고 있다. 번듯한 일자리가 없어 남성의 20%는 결혼을 하지 못하며 여성의 경우도 미혼 선택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집단이 결혼을 못해 가족을 꾸리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운이나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닌, 인구 절벽과 이민자 유입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구조적 문제이다. 남성 자녀는 부모의 자산이 있어야 결혼이 용이하며 이는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맞먹는 영향력을 지닌다. 부동산 자산의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는데다 자녀에게 상속되면서 20~30대의 불평등이 문제를 키우게 되었다.
6장. 90년대생의 다중격차는 586세대의 역사적 특수성에 기인.
1988년 대학 정원 자율화로 대졸자가 급증하고 1996년 대학 설립요건 완화로 인해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들은 1990년 들어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기술관료에 가까운 대규모 집단을 창출하게 된다. 586세대에게 활짝 열렸던 기회의 창이 자녀 세대에서는 완전히 닫혔고 소수의 중산층만이 교육을 통해 계층 지위를 상속하려 분투하게 되었다.
7장. 20대 세계관의 성별, 계층별 특성
조선일보 독자의 주축이며 50대-스카이 대학-강남 아파트 거주 중산층의 자녀인 G(Global) 세대와, 기성 세대의 잘못으로 피해 대중이 되어 이것저것 다 포기한 요즘 것들인 N 세대가 공존한다. 20대 하층의 다수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차등 분배되는 사회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작금의 ‘공정성’ 문제는 20대 세습 중산층 자녀들에게 민감한 것으로,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세계는 오직 그들에게만 문이 열려있다.
8장. 세계관 차이와 정당 지지에 주는 영향
중상위층 20대는 동일 계층 여성과 명문대 진학과 번듯한 일자리 취업을 놓고 예전보다 격렬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에 분노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사회경제적 약자로 살아가는 20대는 연애와 결혼시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약자라는 현실에 절감하면서 분노한다. 여성의 보수극혐 진보성향 쏠림은 수년 전보다 진보적 생각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이고, 20대 남성의 보수화 현상은 민주 진보 정당에 포섭되지 못한 대규모 계층으로 차라리 비당파화에 가깝다. 정당에 대한 무반응이 아닌 부정적 태도를 지녔으며 정당을 기준으로 한 후보 선택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집단으로 분석된다. 30대 중반까지 포괄하여 대규모 탈민주당 유권자 집단이 수년 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닌, 의무와 공평이라고 말한다.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 사회적 의무 부담,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뜻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어야 할 것으로 다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기회의 평등이다. 단순한 입시제도 공정함이 아닌, 공공 보육과 공교육 강화로 사다리를 걷어차이지 않을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둘째, 최소 수준의 사회보장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학보 차원에서 상위 10프로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저자의 구체적인 자료 및 근거와 일리 있는 주장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매우 착잡해짐을 부정할 수 없다. 계층을 통합하고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겠다는 사회적 약속들이 이처럼 극심해진 계급 간 격차를 어떻게 극복하고 실현할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태어나 보니 금수저를 물고 있는 사람이 수저가 없는 이들을 어찌 이해할 수 있으며, 한 번도 뭐가 있어서 누려본 적조차 없는 이들이 장밋빛 미래를 향해 달려볼 수 있을까?
문득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는 건 우연만은 아니지 싶다. 지금의 현실에 대한 많은 생각과 고민을 떠올리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