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자 서울 강남구 행정구역의 하나인 대치동은 2007년 여름, 유명 배우 하희라 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연상시킨다. 평일 밤 황금시간대 공중파에서 이전까지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어렵던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 그것도 강남 8학군을 대놓고 다룬 작품이었다. 애초 16부작이었으나 담당 PD가 정작 교육 당사자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 담아내지 못하였다 하여 2부를 추가한 18부작으로 막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경쟁작이 ‘커피프린스 1호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회 시청률은 17.5%를 기록했다. 코믹한 분위기면서도 학교와 교육 문제를 직설적으로 꽤 잘 다루었다는 평을 받았으며, 2019년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큰 인기를 끌면서 작품을 재조명받기도 하였다.
2008년 이후 학생들의 문해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 채 읽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거짓 뉴스가 난무하고 집단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사회적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 사회에 더 높은 수준의 문해력과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67쪽)
자녀의 교육과 진학을 위해 지방 소도시에서 강남으로 전입해온 주인공은 ‘대전족’, 즉 대치동 전세족으로 분류된다. 낮에는 일식집 직원으로, 밤에는 노래방 도우미와 대리운전사로 일하며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홀로 희생하는 주인공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명문대학 진학이다.
드라마는 주인공 가족의 고단한 대전족 생활을 사실적으로 반영한다.
강북 출신의 엄마는 튼튼한 인맥과 강력한 정보력이 없어 입시 정보에 발품을 팔아야 하고, 엄청난 주거 비용과 사교육비로 떨어진 삶의 질을 가족 모두가 견뎌야 한다. 낡은 건물의 반지하 단칸 전세방에 살면서도 아들의 교육에 절박하게 매달리며 밤낮없이 번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사교육비로 지출한다. 강북에서 전교 1등을 하며 나름 자부심 많던 아들은 강남에 오자 수준 차이에서 오는 좌절감부터 맛본다. 가난하지만 정의롭게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 아들은 결국 행복한 결실을 거두며,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학벌주의와 교육열로 수렴되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반영한다. 그때만 해도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고 했는데, 금수저가 아닌 이상 요즘은 개천에서 용쓰다 욕만 본다며 자조하는 소리를 듣는다.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있느냐’며 비현실적이라고 힐난하곤 했는데, 지금의 사회상은 그때보다 더 양극화되는 추세다.
사람들은 인생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상당 부분 사회적 현실에 의해 결정된다. 나의 계급적 위치, 학력 수준, 부모의 바람, 기대 수입 등에 내몰려 했던 선택을 애써 내 신념인 양 포장하고 정당화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171쪽)
인류학 전공자 출신인 저자가 20여 년 대치동 논술 강사 생활을 접으며 써낸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성인 의식이자 통과의례인 대학 입시를 바라보며, 순수한 본질에서 벗어난 입학사정관제와 자본 논리로 인해 가장 이상적이었지만 가장 변질된 학종 제도의 폐해를 제시한다.
2부는 부동산 개발의 시점에서 강남 신화의 탄생부터 부동산 1번지가 된 역사, 학벌 세탁과 학벌 위조의 온상지가 된 유래를 살펴본다. 대한민국에서 대치동만큼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의 욕망이 절묘하게 결합한 곳은 없음을 알게 된다.
3부는 전공을 살려 돼지엄마와 카페맘 등 다양한 계층의 대치동 학부모 및 강사와 상담실장을 비롯한 학원가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이들에게 주목해야 할 이유를 말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사교육이 공교육의 적이자 사회악으로 여겨지기보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더 나은 입시 제도를 위해 공교육이 흡수할 방안을 제시하면서, 이제는 학벌주의와 사회적 차별이 만들어 낸 교육열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대치동의 행위자들은 사회적 지위 향상 또는 계급 재생산을 위한 노골적이고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독특함을 갖는다. (305쪽)
사람이 아플 때 몸에서 열이 나는 이유가 백 가지도 더 되는 것처럼, 학교를 배경으로 한 교육의 문제는 단순히 학교만의 문제일 수 없다. 저자는 학교 내부가 아닌, 강남 8학군을 둘러싼 지역 전체의 삶과 인간 군상을 아우르는 동시에 사회 문제로서의 교육을 고민하며 그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
그는 우리 삶이 정신적으로는 학벌주의에, 물리적으로는 부동산 신화에 지배당하면서도 때로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강물을 떠내려가는 뗏목에 올라탄 사람은 뗏목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기 어렵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기는 쉬워도 그 반대는 그렇지 않다. 남들이 잘 모르는 자신의 과거 경력을 과시하고 전문가의 식견을 자랑하고픈 욕구를 누구나 겪을 법하지만, 저자의 글을 보면 적어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랜 기간 사교육의 중심에 있었기에 타성에 젖어 사익을 좇을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더 나은 교육을 위한 많은 문제의식과 진지한 고민이 담긴 철학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공고육을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되며, 그런 점에서 달리는 기차에서 먼저 뛰어내린 그의 용기를 높이 살만하다.
학벌주의와 계급 상승이라는 세속적 욕망은 내버려 둔 채 공교육의 몰락을 말하고, 입시 제도를 탓하고, 사교육을 만악의 근원으로 비난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345쪽)
사족이지만 2021학년도 대입 수능을 치를 당시 24명의 우리 반 학생 가운데 8명이 수능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전화기를 손에 쥐여주지 않으면 단군 이래 가장 무기력하다는 힐난을 들으며 금쪽같은 3년을 허비한(?) 그들이 아무런 준비나 대안 없이 입으로만 ‘1년 더’를 외쳤다는 점이다. 어차피 대입에서 강남 친구들과는 경쟁상대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대학을 마친 이후에도 그들과는 전혀 딴판인 인생을 살아가리라 예견한 때문이라면, 어쩌면 이들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를 고른 셈이다. 교육 개혁에 대한 범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더는 교육이 부모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지 않으며 차별 수단이 되지 않는 날을 고대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살아온 방식을 돌아보며 비겁함과 타협을 정당화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으로 남겨
부끄러움으로 간직하기만 하더라도 우리는 변화와 개선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409쪽)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