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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 71] 충동과 광기의 암호를 해독하다

스릴 만점 법의학의 세계를 가보다

 

몸에 이상이 느껴질 때, 우리는 병원을 찾아 원인을 규명하려 든다.

 

간단한 혈액과 소변부터 시작하여 심전도, X선, CT, 그래도 안 되면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까지 동원한다. 원인을 찾으면 치료할 방법이 있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추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 자신만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타인을 해치면 사회와 격리되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사회악적인 존재가 된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만나 1,000건 이상의 범죄를 조사하고 증인으로 활동하는 법의학 심리학자이다. 범죄 행위를 일으킨 사람들의 정신적 장애를 파헤치면서, 그는 인간의 건강하고도 파괴적인 힘의 원동력으로 ‘다이모닉daimonic’ 개념을 사용한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대변하는 이것은 누구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으로 잔혹함과 숭고함이 함께 존재하는 역설적인 잠재력, 다이모닉의 개념을 소개한다. 이 용어의 기원은 그리스어 다이몬(사람을 이끄는 작은 신)과 라틴어 데몬(정신)에서 왔으며, 악마와 악당에게 어울릴법한 영적인 힘 또는 천재에 의해 영감을 받거나 동기가 부여됨을 의미한다. 심리학에서는 개성을 향한 억제할 수 없는 추진력을, 문학에서는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밀어 넣어 자멸 또는 자아 발견으로 이끄는 역동적인 불안을 뜻하기도 한다.

 

2부에서는 특정적인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전문가로서 도달한 법의학적 절차를 설명하면서, 범죄자들의 풍부한 인간 본성과 그로부터 비롯된 분노, 기만, 체면 등을 폭넓게 살펴본다.

 

3부에서는 이중적인 다이모닉의 본질을 다루면서 인간 본성의 합리성에 기초한 법률 체계가 때로는 부당할 수 있음을 말하며 형사사법제도의 인간 친화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의 파괴적 행위는 대부분 인식할 수 없는 무력감, 절망감, 혼란에 대처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감정 상태가 높아지면 적응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듯한 감각이 뒤따르며, 우리를 끌어당기고 뒤흔드는 강한 힘이 된다.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열정이 솟구쳐 자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이럴 때 크고 작은 악이 저질러질 가능성이 커진다. (27쪽)

 

이 책은 심리 평가를 받기 위해 범죄 심리학자에게 맡겨진, 극악무도한 범죄로 기소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심리 검사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저자는 범인의 사회성, 충동성, 폭력성, 불행한 가정생활, 정신병 등 범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역추적한다.

 

그는 1급 살인 혐의를 받는 피고인들의 공통적인 속성을 두루 꿰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제거해야 할 사회악이 아닌, 실수를 저질렀을 뿐인 여느 인간으로 대한다. 심지어 그 대상에는 조금 전 살해한 여자들의 시체를 강간한 엽기적인 연쇄 살인범도 포함된다. 그는 누가 자신을 고용했든 최대한 양심적으로 법정에서 증언한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는 저자나 검사 같은 전문가보다는 독자에게 더 큰 파급력을 미치는 듯하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라도 그 이면에는 항상 애틋하고 눈물겨운 ‘사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법의학이나 심리학자 책에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로르샤흐 잉크 얼룩 검사(https://blog.naver.com/jyooster/222098696728 참조), 조금 덜 알려진 헤어 사이코패스 검사항목, 아주 생소한 위스콘신 카드 분류 검사까지 다양한 심리 검사가 등장한다.

 

보통 사람들이야 접해 볼 기회조차 없겠지만, 이들 검사지에 아무런 감정적 신체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이코패스의 경우에는 더 정밀한 검사가 요구된다.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고, 친부모가 영아를 살해하는 엽기적인 범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범인의 모든 스펙트럼을 조사하기 위해 실험실의 현미경 위에 놓인 배양 접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법의학 심리학자들이 제공하는 일반적인 임상 기록을 넘어 피고인들과 그들의 복잡한 개인사에 대한 심층적인 심리학적 이해를 돕는다. 동시에 인간 본성의 기본적 힘인 다이모닉이 우리의 건설적이고 파괴적인 능력의 원천이라 주장한다.

 

자아를 인식할 때 우리는 자기의 욕망과 의도에 점차 익숙해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의 욕망과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 조절을 강화하고 의미를 향상한다. 우리는 심리적 경험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심리적 이해가 있어야 현실 왜곡과 파괴적 행동에 의지하지 않고, 감정적 강렬함뿐 아니라 심지어 가장 악의적인 충동까지도 잘 견뎌낼 수 있다. (49쪽)

 

범행 당시에 피고인이 제정신이었는지 판단할 때, 법의학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가 사용하는 법적 기준으로 ‘맥노튼 규칙’을 적용한다.

 

이 규칙을 적용하려면 범행 시점에 피고인이 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신질환이 있음을 확실히 입증해야 한다. 범죄심리학자의 주요 역할은 범행 당시 범죄자의 정신상태를 정확하게 판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정신과 광기의 경계는 어디이며 범인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판사로부터 가혹한 징역형을 선고받는 대신 정신병 환자로 인정받으려면 범인은 과연 얼마나 미쳤어야 하는지, 범인의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이 범죄 행위에 미친 영향은 어느 만큼인지 등을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각각의 사례에 대한 자신과의 관계와 느낌, 범인의 성장 배경, 사회 환경,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의 가능성에 대한 초기 인상과 분석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야기의 매듭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검사지 이름과 그 결과처럼 다분히 분석적인 저자의 화법에 약간의 지루함 또는 무미건조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끊임없이 발생하는 강력 엽기범죄 가운데 일부이다. 평범한 독자들이 거의 접할 수 없는 세계로 인도하면서 자자는 자신의 직업적 도전과 보상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다른 범죄 관련 서적과는 다르게 마지막 장에서는 이 모든 내용을 하나로 묶어줌으로써 나약함과 사악함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사법 체계와 맞물려 돌아가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어쨌든 나는 이성을 가지고 발뺌을 하는 사람보다는 정신적으로 흐트러진 사람을 만나서 상담하는 일이 더 편했다. 무척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7쪽)

 

끝으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법의학 심리학자이자 범죄학자인 저자의 독특한 시각과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들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일부 독자들에게는 난생처음 듣는 다양하고 밀도 높은 심리 검사 해석과 이를 따라가기 위한 많은 집중력으로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제시된 사례 가운데 일부는 마치 범죄 현장을 보는 듯 너무 생생하여 때로 소름이 돋기도 한다. 범죄자들의 비열한 행동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탐구하고, 인간 행동의 숨겨진 이면을 이해하는 데 관심 있는 독자라면 법의학 심리학자가 이끄는 여행에 동참해 보시기를 추천해 드린다.

 

포씨유신문 유선종 칼럼니스트 |

프로필 사진
유선종

현, 서울 우신고등학교 영어과 교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신촌 토스트마스터즈 클럽회장 역임
숙명여대 TESOL대학원 9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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