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아침 회의에서 멀쩡하게 얘기를 주고받던 중, 정전으로 화면이 꺼지는 텔레비전처럼 나도 모르게 앉은 채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누가 보면 마치 회의가 지루해서 졸고 있는 줄 알았을 겁니다. 1분쯤 지나 정신을 차려 보니 바로 위 직급의 상사가 쯧쯧 혀를 차며 비웃듯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그런 형편없는 체력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 꼭 동생 같아서 아끼는 마음에 한 소리랍니다. 글쎄요, 친동생이라면 어디가 아픈지부터 물어봤겠죠.
아침 일찍 열린 거래처 기술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업무상 필요하니 듣기는 하는데 문과 출신이라 어려운 기술용어는 외국어나 한가지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움직이느라 긴장이 풀리면서 덥고 답답하고 어둑한 강당 구석에서 잠시 졸고 말았습니다. 이를 지켜보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사장님이 조용히 저를 불러내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거래처 직원들 다 보는데 졸음이 오나? 만약 나한테 권총이 있었다면 바로 쏴 죽였을 거야!” 그에게는 직원의 상태보다 거래처의 눈에 비치는 대표의 체면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사장님이 졸았더라도 거래가 끊기거나 회사가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는 기면증 환자였습니다. 수면이 발작처럼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회의나 강의 도중, 심지어는 운전이나 시험 중에도 발생합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 호르몬의 교란이 원인이며 결국 약물치료를 받고 나았습니다. 미련하게도 모든 잘못은 본인에게 있으며 대오각성하라는 직장 상사들의 틈바구니에서 꼬박 5년을 버티다 결국 이직하고 말았습니다.
20대와 30대 초반 젊은 날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많은 추억과 상처를 남겨 준 직장생활 기억의 일부입니다.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은 차라리 고생했던 추억으로 남지만, 직장 상사들이 놀린 세 치 혀끝에서 시작된 상처의 기억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마땅히 대응하는 방법을 잘 모르던 새내기 사원이기도 하였고, 소심한 성격상 바보같이 웃어넘기고 말기가 일쑤였습니다. 정도만 다르다 뿐 이건 마치 내 이야기 아닌가 착각할 분들,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힘든 직장생활 얘기에서 책으로 돌아와 봅니다. 저자의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관찰력과 통찰로 펴낸 이 책은 가히 일터에서 필요한 올바른 언어생활 안내서이며, 최근 필자가 읽은 자기계발 서적 가운데 가장 실용적이고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교범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오가는 업무용 언어는 일상 언어와는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심히 넘길만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말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일상과는 다른 언어생활의 중심을 꿰뚫는 규칙 또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며,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배워둘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사용 범위를 좀 더 확대하여 일상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어 보입니다.
대체 일상 언어와 일의 언어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저자가 말하는 일의 언어는
첫째, 머릿 속 생각을 혼선 없이 명확하게 전달하는 단순하고 정확한 소통이 핵심이며
둘째, 논리와 감성을 적절히 활용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양질의 언어 선택을 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며 셋째, 감정적으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영역의 골디락스, 즉 중간 온도의 관계 언어가 기본이며
마지막으로 부서원이 존중받고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리더의 언어를 구사하라고 합니다.
정확성과 단순함 그리고 우아함을 가지고 말하는 일의 언어는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면서, 가장 비중 있는 네 가지 분야 즉 정확성을 높이는 소통법, 설득법, 일의 관계 맺기 및 밀레니얼 세대 통솔법을 제시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난 세월 겪었던 직장생활을 떠올렸습니다. 만일 그때 내가 이 책을 접했더라면 좀 더 슬기로운 언어사용으로 상처받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으리라는 일말의 후회가 종종 밀려왔습니다. 당시에도 시중에 이러한 종류의 서적은 분명 나와 있었을 겁니다만, 돌이켜보건대 세상 물정에 어둡고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하여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겁니다. 또한, 분명 누군가는 질적인 조언을 해 주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둘 그릇이 못 되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당시 모자라고 실수투성이인 신입사원에게 가혹한 말 대신 격려의 공치사 한 마디만 해 주었다면 그 회사는 말도 잘하고 일도 제법 하는 괜찮은 인재를 거둘 수도 있었을 거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위로해 봅니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