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생명의 시작은 무엇이며 자아 의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수록 이런 ‘거대한 질문’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 책을 점점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를 묻는 이 책은 우주에 대한 서정적이고 읽어볼 만한 토론 거리를 제시한다. 다른 많은 과학 입문서와는 달리, 이 책은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보다는 의도적으로 저자의 생각을 담으려 한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들을 일반적인 용어로 탐구할 뿐이다. 저자는 매일 별의 먼지와 열역학 법칙을 다루는 과학자이자, 해먹에 누워 별을 곰곰이 생각하는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는 대부분 명성을 얻었으며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전작 "메인의 섬에서 별을 찾아서"에 이어 이 책에서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먼지만도 못한 인간의 위치를 다시 돌아본다. 과학과 인간다움을 선사 받은 우리는 또다시 우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 무(無)에 관하여
우리가 다른 인간들에게 부여하는 초월적이고, 비물질적이며, 오래가는 자질들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컴퓨터로 만들어진 세계와 같은 착각이다. 우리 인류가 마음속에 문화 자본을 축적했다는 사실은 분명 대단한 성취이자 업적이다. 인류는 세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이론의 토대를 세웠고, 아름답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그림과 음악, 문학을 창조하였으며 사회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법규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훌륭한 장치들도 인간의 마음을 벗어나서는 본질적인 가치가 없어진다. 인간의 모든 의식과 생각, 즉 정신이란 분해되고 용해될 운명에 놓인 원자의 집합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존재와 의식은 항상 무에 가까워지고 있다.
※ 우주관에 대하여
우리는 시간의 대혼란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동시에 그 흐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공허의 일부가 아니며 양자 진공의 변동도 아니다. 언젠가 육신의 원자가 흙과 공중으로 흩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살아 있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다. 책상 위에 올린 손이 보이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볕에 태양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창밖을 내다보면 해안가로 이어지는 소나무 오솔길이 보인다. 우리는 우주에서 온 물질일 뿐만 아니라 정확히는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의 결합체다.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별들의 핵반응에서 하나씩 만들어진 후 우주로 던져졌다. 수백만 년 동안 소용돌이치고 응축되어 행성으로, 단세포 생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인간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말 그대로 우주의 일부분이다. 유기체와 무기체 두 가지 물질로 우주가 구성되었다는 널리 퍼진 믿음과는 반대로, 우주에는 단 한 가지 종류의 물질만이 존재한다. 바위, 물, 공기, 나무, 인간 등 모두 같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 의식에 대하여
우리의 사고와 감정, 자아 인식, 그리고 ‘나다움’의 느낌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독특하며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은 완전히 물질적인 원자와 분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이 그저 물질에 불과할 수 있다니, 불가능한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무기체로부터 생명을 창조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있는 합성 생물학자들에게는 공식의 기본값에 불과하다.
저자의 초기 작품 <메인의 섬에서 별을 찾아서>와 매우 비슷하게, 이 책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읽을거리이다.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로부터 '무에 관하여', '불멸', '기적', '생명체는 정말 특별한가?' 등 17개 주제로 구성돼 있다. 요점은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기술 과학 서적이 아니라, 소설가이자 수필가로 전향한 이론 물리학자 개인의 사색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정말 구체적으로 인생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앞서 언급한 ‘거대한 질문’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개성적인 통찰과 명상은 매혹적이고 위로가 된다.
저자의 필력은 소재만 과학일 뿐, 여느 문필가보다 부드럽고 매력적이다. 특히, 부활절 달걀처럼 이 글의 곳곳에 숨겨진 다채로운 직유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이해를 돕는다. 예컨대 태양과 같은 거대질량이 트램펄린 위에 볼링공처럼 가라앉을 때 그 아래 매트를 접는 것처럼 공간을 구부린다고 설명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기하학은 질량과 에너지의 영향을 받는다는 예시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한 비교는 과학을 잘 모르는 필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
그의 전작들은 주로 무한의 본질, 우주의 기원, 비생명체로부터 생명을 창조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의식의 의미 등을 다룬다.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묻는 질문에서 저자는 ‘우주 기원의 양자 안개 속에서 인과관계가 녹아내릴 수 있다'는 시각에서 인과관계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우주 생물중심주의'에서 '우리의 우주에서의 삶은 프라이팬 속의 섬광, 우주 속의 시공간이 펼쳐지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우주에 인류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우리에게 다른 생명체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교감을 염원하게 한다. 저자는 다른 지적인 존재들 역시 과학과 예술을 창조하여 우주적 존재의 파노라마를 기록하려 시도하며, 이러한 열정을 공유할 것이라 말한다. 복잡한 과학적 개념을 쉽게 설명하면서 감동적인 산문을 만드는 저자의 능력은 희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우주의 범위와 그것을 이해하는 우리의 한계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준다. 이론 물리학에서는 확답을 거의 주지 않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유라는 마음의 사치를 마음껏 누리면 될 테니까.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