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이제 누구도 더 이상 질병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행히 이 책은 코로나도, 질병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미생물에 집중하는 것일까. 뻔한 답변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미생물이 없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 우리 인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미생물의 가장 큰 업적은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들을 최근에야 발견하긴 했지만, 이들이 세상에 남긴 흔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미생물은 인류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해왔고, 우리가 이 행성을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오랜 세월 지구를 지배해온 영장류로써 큰 자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유감이지만, 지구는 사실 인간이 아닌 미생물의 행성이고 우리는 여기서 그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체해봐야 인간이야말로 미생물의 집합체에 불과할 뿐이다.
미생물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는 항상 미생물을 먹고 마시면 산다. 개인적으로는 맥주의 형태로 서식하는 맛난 효모균을 선호한다. 물론 병원균은 언제나 사양하고 싶다.
미생물은 모든 면에서 우리의 세계를 형성했다.
생물학이나 화학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정치, 종교에서도 우리가 몰랐을 뿐, 숨은 주인공 노릇을 다한다. 놀랍게도 미생물은 무중력 우주 공간에서도 살 수 있고 고철 덩어리에서 순도 높은 금을 추출해 주기도 한다. 노벨상을 타게 할 정도로 너무 열심히 일하니 일요일 하루쯤은 쉬어가자고 말하고 싶어진다.
미생물의 역사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과학만으로는 미생물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일례로 우주에 있는 크고 먼 물체들을 다루는 천문학에서도 미생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우리가 우주의 다른 곳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우선 지구상의 생명체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대중적 표현과 인식으로 볼 때 미생물은 어둠의 존재로 연상되는 경향이 있으며, 대개는 병원체와 같은 부정적인 맥락에서만 언급된다. 이들은 박테리아, 고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미시적으로 작은 단세포 유기체뿐 아니라 작은 조류, 균류 또는 아메바 등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들은 문자 그대로 오랫동안 간과되었고, 오늘날에도 과학이 그들의 모든 비밀을 풀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약 3페이지에 달하는 100개의 미생물 목록은 아주 작은 것의 세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다면적인지, 우리가 이미 배운 것과 미래에 어떤 발견을 간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 동물, 식물의 삶을 곤경에 빠트리는 ‘나쁜 녀석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매우 유용하거나 매력적인 존재로 보아줄 만하다.
이 행성에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가장 척박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편으로 100개나 되는 미생물을 언급하면서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이 없는 점은 매우 아쉽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궁금한 마음에 미생물 백과사전을 뒤져가며 이름도 낯선 바이러스의 사진과 정체를 찾아 헤매었으니 이만한 생물학 공부가 없다. 또한, 바이러스의 라틴어 학명 접근법에 더하여, 예컨대 세라티아 마르세센스는 욕실 분홍 곰팡이로, 오르토폭스바이러스 바리올라는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로,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는 맥주 효모 등 우리가 일상에서 부르는 명칭을 붙여주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이러한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미생물학의 역사와 기초에 대한 개념을 얻을 수 있고, 크기도 다양한 이들 종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생물이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놓고 저자들은 아직 그 역할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한편, 무엇보다도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관찰 연구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기후 위기야말로 인류가 향후 수십 년간 다루어야 할 주요 주제가 될 것이고, 인류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면 미생물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서운함은 뒤로하고 미생물의 세계에 한 번 빠져 보시면 어떨까.
포씨유신문 유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