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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종 엣지리뷰 80]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부동산, 토지거래의 정석을 알려드린다

 

전화가 걸려 왔는데 목록에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다. 조금 불안하지만 일단 받아본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기가 막히게 좋은 토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웬 여성이 배우 전도연처럼 코 먹은 소리로 다짜고짜 나를 사장님으로 부르는 전화라면, 일단 주의할 대상이다.

“아, 일단 저는 사장님이 아니고요, 아니 그렇게 좋은 토지라면 직접 사시지 왜 저한테 전화를 거셨어요? 그리고 이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아셨데요?”

“..... 딸깍.”

 

이런 뻔한 내용으로 투자를 권유하는 기획부동산의 스팸 전화는 업계의 유명 인사 김미영 팀장이 은퇴한 이후 서부지검 검찰수사관 다음으로 자주 온다. 투자 소리에 혹할 만도 한데 워낙에 금전 다루는 감각도 젬병인데다 부채도 자산이라며 대출만 잔뜩 받아 둔 나는 빚 부자다. 요즘처럼 금리가 올라 월급에서 더 많은 액수의 이자가 공제될 때면 마치 몸속의 혈액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다. 업자들에게 당하고도 속이 상해 말을 안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의외로 이런 묻지마 투자에 혹해서 거금을 날린 사람들이 주위에 전혀 없지는 않다. 글쎄, 나 같은 유리 지갑 월급쟁이한테는 해당 없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좋은 정보는 절대로 나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은 만고의 격언이다.』 (27쪽)

 

일어일문학과 유학생 출신으로 일본에 정통하고 한국의 미래에 관심 많은 인문학자이자 자칭 도시 문헌학자인 저자는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소위 전문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상세히 일러주기 위해 작심하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지방이든 도심지든 자가용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주로 급변의 조짐이 보이는 현장을 탐방하며, 그렇게 해서 택지개발, 재개발, 재건축 예정지를 답사한 그의 기록은 투자자들에게 훌륭한 보고서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투자자가 가장 확실하게 매물을 확인하는 방법은 직접 땅을 둘러보는 것일 테지만, 친절하게도 그럴 시간과 여력이 없는 이들을 위해 저술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경인 운하, 부천 항, 아라뱃길, 세종시 이전, GTX 건설 등 저자가 제시하는 굵직한 국책 개발사업 사례들은 사실 부동산을 잘 모르는 필자 같은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다. 국책사업 자체가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지도 않거니와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하기에 지역 개발의 역사나 동향까지는 모르더라도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귀동냥 수준이 아니라 내 집 마련을 위해 주거지를 옮겨야 하거나 자본 증식을 위해 투자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는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는 점이다. 정확한 정보의 확보가 매우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땅의 가치를 읽어내는 다섯 가지 시선을 부제로 부동산 투자자를 위한 큰 그림 안내서인 이 책은 전체 2부 5장으로 구성되었다.

 

1부 국가 프로젝트로 읽어내는 부동산의 역사 (1~2장)

 

1장 도시기본계획의 탄생과 변화에서는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는 정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면서, 독도법을 익히고 임장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도심 정비사업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라면 식민지 시기와 현대 한국의 각종 개발계획 평면도를 살펴보면서 현재의 개발 추진 상황과 비교해 볼 것을 추천한다. 또한, 군사시설이 포함된 지역의 경우 주변에서 호재라고 부추기는 정보들의 진위를 어렵잖게 파악할 수 있음을 조언한다.

 

2장 경인 운하 및 행정수도 계획의 변천사에서는 오래전부터 공론화되었던 경인 운하, 한강 다목적댐, 행정수도 백지화 계획이 실제로 아라뱃길, 신곡보, 세종특별자치시의 형태로 실현되는 등 현실화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기획 부동산에게 속기 쉬운 소재임을 경고한다.

 

2부 살기(living) 좋고 사기(buying) 좋은 부동산의 조건 (3~5장)

 

3장 남북관계와 부동산의 상관관계에서는 행정수도 이전계획의 경우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 시대의 산물이며 북한의 장사정포 사거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음을 알려준다. 당시 여건상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보다는 북한의 안보 위협이 우선순위였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전국 곳곳의 지하상가와 터널은 방공호와 진지였으며, 강남 일대의 오래된 아파트에는 소총 사격이 가능한 총안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서래 마을에는 벙커를 짓기도 했다. 서울의 주요 건물 옥상에는 방공포대가 설치되었고, 반포대교 아래 잠실대교는 폭격에 대비한 예비교량이었으며 과천 서울대공원의 넓은 땅은 본래 무기 개발 연구소 부지였다가 공원으로 바뀐 것이 그 사례다.

 

『역시 호재가 아닌 곳은 소비자와 투자자가 몇 번이고 발품을 팔아서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각자도생 사회입니다.』 (182쪽)

 

4장 삶과 집값을 붕괴하는 재난 위험에서는 주거와 토지를 위협하는 요소로 산사태, 지진, 지반침하, 토양오염, 공해, 상습침수, 상수도 공급난 등에 주의할 것을 주문한다. 이런 재난 요소를 안고 있더라도 행여나 집값과 땅값이 떨어질까 봐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으며 현장을 확인하는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움을 상기시킨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2021년에 작성한 <시나리오로 본 우리나라 미래 재난 전망>을 보면, 재난 연구자들은 한국에서 특히 발생 위험이 높은 재난으로 풍수해, 폭염, 감염병, 미세먼지, 정보통신, 화재, 산업재해 등을 꼽았습니다.』 (225쪽)

 

5장 재개발과 교통망 호재의 실체에서는 대도시 외곽이나 농촌 지역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문제로 부실한 대중교통과 도보권에 편의시설이 없어 심각한 식량 곤란을 겪는 현상인 푸드 데저트를 지적하는데, 그 원인은 심각한 인구 감소에 있다.

 

『신도시나 택지를 개발할 때 구역 안의 모든 원도심을 일괄적으로 철거하지 말고, 신도시 속의 원도심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일부 남겨두는 정책적 배려가 좀 더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269쪽)

 

도시 개발의 역사를 배우고 이런저런 상식도 넓히고 부동산의 개념을 새로이 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이 지침서의 결론은 살기 좋고(good to live) 사기 좋은(good to buy) 땅을 사려면 땅을 잘 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 가서 땅을 밟고 다니면서 높낮이를 확인하고, 공기 냄새도 맡아보고,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와 열차를 타보면서 자가용이 없을 때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겪어보시라 조언한다. 당장 내 가족이 사는 집 한 칸 마련하는 것만도 일평생의 노력과 수입이 필요한 처지에 땅 투자가 웬 말이냐 싶지만, 이 책이 주는 조언이 절대 헛되지 않을 날은 꼭 오리라 믿어본다.

 

포씨유신문 유선종 칼럼니스트 |

프로필 사진
유선종

현, 서울 우신고등학교 영어과 교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신촌 토스트마스터즈 클럽회장 역임
숙명여대 TESOL대학원 9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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