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톰 버틀러는 철학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힘이라 정의하며,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크게 생각하고, 존재하고, 행위하고, 인식하는 네 가지로 제시한다.
지금 우리에게 철학 필독서가 필요한 이유와 함께 철학 연구의 목적은 사람들이 생각해온 바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진실을 아는 데에 두고 있다. 철학서 읽기는 잃을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을 것뿐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배울 거리가 있지만, 우리가 관심 가는 모든 분야를 널리 두루 읽을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도록 한 가지 예외를 만들어 낸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톰 버틀러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덕분에 보상은 우리가 받게 되었다. 그가 저술한 경제, 정치, 자기 계발 등 50권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 해당 분야에 대한 훌륭한 개요를 제공한다. 독자들에게 더 많은 독서를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각 저자의 주요 내용을 식별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보드리야르, 시몬 드 보부아르, 베르그송, 다비드 봄, 노암 촘스키, 푸코, 마이클 샌델, 슬라보 지젝 등 이 책에 언급된 사상가들의 이름은 모두 오랫동안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이들의 생각을 내 삶을 통해 제대로 체화해 본 적은 없다고 고백한다. 고등학생 때는 시험 대비용으로 무조건 암기해야 했던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졸업 이후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생긴 정신력의 군살 그리고 향상된 대인 기술과 함께 그들의 철학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운 이후 다시 접하게 되니 살짝 설레기까지 한다.
철학자들과 그들의 작품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들어 본 풍월은 있어서 노암 촘스키, 대니얼 카너먼, 마이클 샌델에게로 먼저 눈길이 향한다. 우선, 영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해보았을 ‘변형생성문법 이론‘으로 유명한 노암 촘스키는 엄밀히 말해 철학자가 아니면서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빅 브러더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존경받는 뛰어난 언어학자다. 철학적 원론을 논하기보다는 철학적 정책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도록 앞장서는 모습이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 권력은 정치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경제에 있습니다. 무엇을 생산하고, 얼마를 생산하고, 무엇을 소비하고, 투자를 어디에 하고, 누가 일자리를 가져가고, 누가 자원을 통제하는 등등의 중요한 결정을 민간경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134쪽)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실제로 생각이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이원화되어 두 시스템이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연계 및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하였으며, 심리학 연구가 우리의 사고 및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데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결론으로 강렬한 흥미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또한, 노력의 비교 격인 ’노오력‘ 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최근 명성을 얻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우리 사회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을 설득력 있게 펼쳐놓았다. 본래 능력주의라는 말은 195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주창한 것으로, 능력이 있든 없든 능력주의가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것을 예견하였으며 실제 지금 우리는 그 병폐 속에 살고 있다. 단순한 경제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시민 사회의 일원이 될 것인지를 다시 묻고 있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는 정면의 책상 위에 램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게 되는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애인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음을 어떻게 감지하는가? 길에서 거칠게 달려드는 자동차를 어떻게 의식도 하기 전에 가까스로 피하는가? 이런 이유는 아무리 추적해도 알아낼 수가 없다. 인상과 직관과 많은 결정을 만들어 내는 정신작용은 머릿속에서 조용히,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다. (252쪽)
일반적으로 철학 서적은 오래된 고전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특징은 우선 최근 21세기 들어 세간에 유명해진 것이 꽤 많다는 점이다. 이로써 철학이 명백히 과거의 유산이라는 인상을 지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은 샘 해리스나 니콜라스 탈레브처럼 실제로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몇 명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철학자로 분류되어 그 집단에 포함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이런 점은 작가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으로 느껴진다. 저자의 글솜씨 자체도 훌륭하고 전반적인 내용이 아주 잘 요약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작품 당 읽을 분량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으며 꼭 필요한 내용 위주로 언급하여 좋은 균형감을 보인다.
서문에서 저자도 인정하듯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 철학자들이 알파벳 순서로 나열된 구성이다. 연대순으로 나열되는 일반적인 조합보다는 주제별 목록을 선호하는 편이라, 작가가 나름 고전적 범주를 피하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 한 것으로 이해된다. 본문에서는 각각의 고전 작품에 유명한 인용구 한두 개가 인용되고, 이어 한 문장으로 된 저자 소개와 본문 끝의 더 알아보기 보너스 및 유사한 맥락에서 읽을 만한 다른 책들의 목록이 뒤따른다. 작품의 요약본은 저자의 간략한 전기를 포함하여 평균 일곱 장 분량으로 읽기에 매우 적절하다. 독자들이 단 몇 분의 여유만 할애하더라도 필독서 한 권을 알 수 있도록 이상적으로 구성되었다.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을 얻기에는 철학책이 제격이라 하나, 사실 단 한 권의 철학책이라도 제대로 읽어 자기 수준으로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철학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안성맞춤이겠다. 모르긴 해도 책장에 보관해두고 다양한 세상일을 겪을 때마다 틈틈이 꺼내 읽는 방법이 매우 마땅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대단히 괜찮은 철학 입문서이다. 책의 전체 길이와 일부 철학자들의 깊이로 보아 지금까지 가장 쉬운 철학 안내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벼운 중급' 읽을거리라 하겠다. 철학자와 그의 대표 작품에 대해 최소한 ’들어본 척‘은 보장해줄 것이다. 독자에게는 아주 사소한 경험이 될지는 몰라도, 특정한 주요 작품에 중점을 두고 매우 광범위하고 즐거운 철학으로의 여정을 원한다면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포씨유신문 유선종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