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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 83] 사람을 얻는 지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스페인 아라곤 태생의 예수회 신부인 그라시안은 17세기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도덕주의 작가이며, 유럽 정신사에서 그가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특별하다.

 

로렌초 그라시안이라는 이름으로 낸 첫 번째 소책자 ‘영웅’(1647년)에서 그는 고상한 취향, 뛰어난 장점, 사교에서의 우아함, 자연스러움, 공감 등과 같은 20가지의 뛰어난 특성을 지닌 위대하고, 덕망 있는 이상적 모습의 남자를 그려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리한 사교계 사람’(1646년)이라는 책도 재능과 소질 사이의 신중한 관계 속에서, 말과 행동의 조화 속에서 그리고 현명한 선택과 분별의 기술 속에서 완벽하게 도덕적인 처신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

 

‘손금과 처세술’(1647년)은 세상 물정에 밝은 태도에 대한 지시를 담고 있는 격언 모음집이다.

 

철학 소설 ‘불평꾼(1651-1657년)은 여행이라는 비유적 형식을 사용해서 인간이 세상과 자아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비판적 환멸로 묘사하고 있다.

그라시안은 자신의 작품에서 독자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관된 미 이론을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그라시안의 사유는 한편으로는 관념적 형태의 후기 가톨릭 스콜라 신학의 철학적 전통에, 다른 한 편으로는 예수회의 학문적 이성이 매개하고 있는 광범위한 고전적 교양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전 교양에서는 수사학이 아름다움의 규범과 표본을 세우고, 유효한 언어 예술 작품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풍부한 형식, 수단과 기술을 제공한다.

 

그라시안에게는 이론의 독창성보다는 수사학적으로 높은 수준의 예술 산문과 경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유쾌하게 정곡을 찌르는 응축된 형태로 이루어진 언어 유희적이고 재치있게 암호화된 매개가 더욱 중요하다.

그는 개념주의의 주요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 학파의 언어미학은-그라시안은 스페인 황금시대에 찬란하게 발전한 일반적 예술 이론에 몰두하지 않았다-자족적인 연관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고, 반대로 삶과 세상의 처신을 가르쳐주는 지시에 순응했다. 그 미학은 소위 미리 주어진 목적, 전략적 목표와 확고한 유희 규칙을 지닌 영향 미학이다. 이론과 실제, 미에 대한 규범적 생각, 완벽할 정도로 능숙하게 언어를 다루는 것과 윤리적 태도는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통일을 이룬다.

 

’훌륭한 인간과 능숙한 웅변술‘이라는 고대적 이상을 따르자면 수사학은 이상적 유형의 인간과 삶에 대한 이론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을 얻는 지혜‘는 개인과 직업 생활의 항해에 관한 300개의 시원시원하면서도 복잡하게 쓰여진 경구를 모은 것으로, 후기 스페인 바로크 시대의 문학적으로 화려하지만,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세계의 산물이다. 그의 세속적인 저작들이 널리 인기를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수도회의 지도층에 의해 비난받았고, 그의 생애의 대부분은 개인의 지위, 즉 개인의 생존이 개인적, 제도적 후원에 의존하는 문화 속에서 개인의 진정성과 사회적 예절 사이의 선을 넘나드는 것이었는데, 이는 결국 개인적인 유보 및 교리적 정통성을 요구했다.

외모와 현실, 인격과 비인격의 구분은 이 책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다.

 

43절에서는 소수와 함께 생각하고 다수와 함께 말하라고 충고한다. 진실은 소수를 위한 것이고, 실수는 흔하고 저속한 것이며, 대중적 합의의 조류에 맞서 수영하는 것은 위험하고 소외되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침묵 속으로 물러난다고 말한다. 99절에서 그는 우리에게 사물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겉모습이 별로면, 실제로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177절에서는 친밀함이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들에게 의존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줌으로써 경멸감을 낳기 때문에 남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말한다.

 

공공의 자아는 사적 자아를 위한 방패이며, 이는 무리의 천박함에 의해 결코 타협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온순하고 절제된 모습을 가꾸는 동안에도, 우리는 우리의 진실성과 도덕적, 지적 발전을 무자비하게 고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결점 고칠 수 없다면 숨겨야 하고(9절), 취향과 지식은 대중의 수준을 넘어서야 하며(28절),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람들과 교감하며 훌륭하고 밝은 것을 행동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44절)고 충고한다.

 

그라시안의 격언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일로 흔하게 나타나며, 점차적으로 우리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얻고, 우리의 가장 깊은 지혜를 완전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별이 빛나는 이유는 우리가 별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우면 위엄은 사라지고 만다.

 

옛날과는 전혀 딴판인 21세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17세기 스페인의 현자가 전하는 삶의 지혜는 그다지 새로움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예의와 격식을 중시하던 17세기 왕정 시대로부터 멀어져 있으며, 거리낌 없이 즉각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지금이지만, 그라시안의 감정적 침묵과 지혜는 충분한 공유를 통해 상호 존중감이 떨어지는 우리 시대에 귀중한 교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포씨유신문 유선종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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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종

현, 서울 우신고등학교 영어과 교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신촌 토스트마스터즈 클럽회장 역임
숙명여대 TESOL대학원 9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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