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과도 같습니다. 창문이 크고 많을수록 세상이 더 잘 보이는 법입니다. [유선종 엣지리뷰] 코너는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과 나 자신을 위해 읽어두면 좋은 책을 소개해 드립니다. |
저자는 독일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법률가이다. 오늘 일은 끝! 이라는 제목이 매우 신박하게 다가오는 한편, 적용 대상에 따라 탄력적인(?) 우리네 법과는 달리 독일의 법 세계는 융통성이 별로 없고 그런 국가의 법률가가 쓴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저자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치 같은 재료로 만든 요리라도 요리사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격이랄까.
일은 필요악인가
저자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일은 필요하지만, 일하기는 행복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이런 생각, 우리는 언제부터 해 보기는 하고 살아왔는지 궁금해졌다. 이미 나이 든 계층이야 관성적인 직장생활로 어쩔 수 없다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층의 직업관은 예전과는 달리 좀 더 논리적 이성적으로 가는 추세다. 일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약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일을 ‘직업’으로 불러 하나의 개념이 되었고 여기에 이데올로기가 씌워진 이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기독교 직업관이 지배적이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일자리는 꼭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되었다. 이 세상이 하나의 종합운동장이라면 일자리는 입장권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어떤 종목에 참가하여 어떤 성과를 낼지 여기서부터 딴지에 걸린다.
저자는 직장생활에 대한 거짓된 환상 일곱 가지를 나름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1. 열정을 불태우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냉철한 머리는 열정에 취한 머리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냉철하게 거리를 둘 수 없게 된다. 열정적이어야 정상이거나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일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힌다.
2.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장한다?
도전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곳곳에 가득하면 사회는 무너진다. 직원들이 도전에 맞서고 있다면 어떤 회사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습관화 반복화 된 업무 숙련도이다.
3. 자유롭게 무언가 만들어 낸다?
일의 자유와 사회적 중요성은 서로 반비례 관계이다. 중요한 일일수록 자유롭지 못하다. 권한과 책임이 분명하지 못할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일의 자유, 당신은 얼마나 누리시는지?
4. 일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은 일 말고도 얼마든지 있지만, 어떤 대상이든 의미를 찾으려면 일을 통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기본 재원을 갖추어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대상에 부여하는 의미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저마다 의미를 두는 대상과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5.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
자아는 오직 스스로만 찾을 수 있고 실현하는 주체 역시 자신뿐, 일이 우리에게 자아를 찾아주지는 않는다. 일은 자아실현의 징검다리 혹은 매개체일 뿐 최종목표가 될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6.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내가 회사에 내어놓을 수 있는 양질의 노동력과 시간이며, 회사의 이익에 보탬이 된다는 전제하에 중요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7. 좋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서로의 이익에 도움이 될 때는 좋은 사람이 된다. 가장 큰 이직 요인이 바로 사람 때문이다. 싫어도 피해갈 수 없는 경우 종종 마지막 선택을 결심하게 된다. 사람에 의한 상처는 평생 간다. 20년 전 들었던 듣기 싫었던 말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일과 직장에 대한 새로운 개념
최근 직장 내 갑질이 많은 관심거리였다. 이 현상의 뿌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할 줄 모르면서 내 돈 주고 사람 부리는데 뭔들 못 시키겠냐는 고용주들의 얄팍한 생각에 있다. 임금을 주는 이유는 피고용인의 노동력과 시간에 대한 보상일 뿐이지 그의 인생과 인격까지도 돈으로 산 것이 아니다. 물론 피고용인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만큼 개인적인 일은 최대한 자제하고 응분의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해야 맞다. 이 책의 저자가 독일인이고 독일의 현실에 바탕을 둔 저서이므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일과 직장에 대한 개념이 점차 논리적 이성적으로 움직여가는 큰 흐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작고 얄팍하지만 다루는 이야기는 절대 가볍지 않다. 책 뒷부분의 일과 회사에 대한 솔직한 조언이야말로 이 책의 고갱이다. 취업 준비생은 물론, 직업의 세계를 잘 모르는 중고등학생부터 일에 대한 개념과 노사관계 등을 제대로 배우고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세상을 너무 모른 채 처음부터 일일이 겪어가며 배우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청년층 80%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데, 행복한 삶을 언제나 가져볼까 행여 더디 오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오지랖일까?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