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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 65] 환자 H. M.

뇌 수술 환자의 사례로 보는 뇌 과학의 발전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이며 다른 어떤 종의 생명체도 해내지 못한 문명을 이루어 지구라는 별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게 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1.3Kg에 불과한 인간의 장기인 두뇌 덕분이며 그 중에도 일등공신은 ’대뇌피질‘이라고 생각해왔다. 인류학으로 유명한 이상희 박사가 저술한 ’인류의 기원‘에 따르면 인류의 두뇌 용량이 급격히 커진 시기는 사냥기술의 발달로 대량의 단백질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때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각설하고, 이처럼 위대한 존재로 부각된 인간의 두뇌에 만일 이상이 생겨 인간답게 살기 어렵게 된다면 어찌 될까. 환자 H.M.을 통해 저자는 영화 ’메멘토‘의 직접적인 제작 동기이기도 했던 기억 상실증에 관한 흥미로운 그러나 심지어는 기괴하고 비참할 수도 있는, 그늘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의학계의 두뇌연구 역사를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는 책상에 앉아 가벼운 손놀림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기만 하면 두뇌의 어느 특정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대략적이나마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그러한 정보가 어떠한 경로로 시각화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본 적은 없었다. 지도를 만들려면 직접 발품을 팔아 방방곡곡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아야 했던 시절처럼, 저자의 외할아버지도 그와 같은 탐험가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오늘날 두뇌에 관하여 알려진 많은 사실들을 밝혀내는데 일조하였음은 분명하다. 탁월한 신경외과 의사로서 그가 이룩한 뇌엽부분절제술과 정신질환 연구 분야에 관한 발전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의학적 진보이자 업적이다.

그러나 환자가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두개골을 열고 전기 자극을 주어 반응 현상을 관찰 기록한다거나 두뇌의 일부를 제거해가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 또는 치료하려면 직접적인 병변, 즉 문제가 되는 두뇌 일부분을 제거해야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른 저자의 외할아버지는 환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기억을 주관하는 해마와 편도체를 포함한 내측두엽의 상당부분을 흡입기로 제거하였고 수술 후 봉합부위를 클립으로 마무리해둔다. 마치 후손에게 물려주는 유산과도 같이 그의 외손자는 환자의 사후에 두개골을 열어 두뇌를 적출하면서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 이 환자의 뇌는 무려 2401개의 절편으로 분해되어 신경외과 의사들에게 시료로 제공된다.

정상적인 사람이 자신의 두뇌를 열어 자신을 피실험체로 사용해도 된다고 동의할 리는 만무하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미국에서 그렇게 많은 정신병 환자가 있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지만, 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주립 정신병원, 일명 생활회관에 수용되는 환자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신경의학 분야에서는 풍부한 실험재료가 확보되어 온갖 종류의 두뇌 임상실험이 가능했으니 경제용어로 말하자면 호황을 누렸던 셈이다.

겨우 일곱 살 나이에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로 심한 뇌손상을 입게 된 환자 헨리 몰래슨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사고 이후 점차적으로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작을 일으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나머지 또래보다 3년 늦게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생계를 위해 제조업체에 취업을 하긴 했으나 아주 단순한 포장 업무에도 제품 개수를 잊어버려 생산 공정에 차질을 빚게 만들어 결국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자신을 제어할 능력을 잃어 발작으로 인한 소란을 염려하여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도 겨우 참석만 허락받는다. 온순하고 다루기 쉬운 환자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독 자신의 생모에게는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고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스스로도 매우 힘들어 했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이후에도 50년 가까이 외부와의 접촉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과, 심지어는 그 이후에도 미국 유수의 신경의학도들에게 살아있는 피 실험체였다.

아무리 좋은 학문적 또는 의학적 명분을 지녔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분명 윤리적이지 않다. 반면, 상대적으로 극소수인 환자 실험 군으로부터 얻은 결과가 전체 인류에 희망이 되고 삶에 보탬이 된다면 마땅히 이를 저지할 명분도 찾기 어렵다. 자기 집 정원사의 여덟 살 먹은 아이에게 강제로 수두 균을 접종하여 수두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제한 제너가 그러하고, 노비의 신체를 훼손하여 조음기관을 해부학적으로 파악하고 한글을 창제하여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계몽한 세종대왕이 그러하듯, 다만 무언가를 얻으려면 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온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본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프로필 사진
유선종

현, 서울 우신고등학교 영어과 교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신촌 토스트마스터즈 클럽회장 역임
숙명여대 TESOL대학원 9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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