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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14] 올리버 트위스트

19세기 산업혁명기 영국 사회의 자화상

 

이 작품의 줄거리를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고아인 올리버가 고아원과 구빈원(workhouse)의 구속에서 도망쳐 런던에 온 후, 범죄자들의 세계에 빠지게 되고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결국은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얻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동화나 촌뜨기 소년의 인생 역전 로또 맞은 이야기쯤으로 여길 수 없는 근거는 바로 작품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들어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누린다. 증기기관 발명을 통해 철도와 선박이 등장하고 통신 시설이 발달한다. 생활의 중심 역시 농촌에서 도시로 바뀌어 영국 사회를 지배하던 귀족은 몰락하고 도시 자본가가 세력을 얻기 시작한다. 수제품은 이제 기계로 대량 생산되고 기술이 없어도 노동력만 있으면 누구나 공장에서 일할 수 있어 가난에 찌든 빈민층은 어린아이까지 공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의 아동 노동을 허용한 악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공리주의에 근거하여 싼 임금으로 빈민을 쥐어짜고 죽을 때까지 노동력을 착취한다. 사람이 가난한 건 개인이 나태하고 무절제하기 때문이니, 최대한 잔인하게 취급해서 자립할 마음을 길러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학교는 주입식 교육으로 개성을 파괴하고,

사회는 세금으로 쥐어짜고,

직장은 노동력을 착취하며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회가 나타난 것이다.

 

이후 거의 200년이란 세월이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권과 노동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고 자본에 휘둘리며 금전을 숭배하는 우리 모습과 어딘가 모르게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조금 더 살펴보자면,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보수성향이 지배적인 국가답게 교구(敎區)의 빈민이나 취약 계층을 돌볼 책임감과 온정주의 전통을 이어가던 신분제 사회였다. 지역별로 교구는 미혼모에게는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양육 책임을 부과하고 지원하며 빈민에게는 생존 수준의 원조를 해 왔다. 한때는 빈민 가족 수에 따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자본주의가 확장되면서 빈민에 대한 온정적 지원은 국가의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졌고, 기존의 지원 방법은 빈민들에게 자립 의지는커녕 의존심만 키워 사회악을 유발한다는 비판에 맞닥뜨렸다. 

1834년에 개정 시행된 신구빈법은 빈민들을 지원받을 자격 여부에 따라 양분하여 해당자만을 구빈원에 수용하고, 수용자들이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없도록 관리하였다.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은 구빈원에 들어가야만 교구의 원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수용된 빈민들은 시간, 임금, 노동력의 착취를 당하며 혹독한 통제를 받게 되었다. 강제 사역과 목숨을 겨우 부지할 만한 급식으로 죄수보다 못한 처우라는 비난을 받았다. 실제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은 1948년이나 되어서야 폐지되었다.

 

주인공 올리버는 이런 구빈원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학대와 매질을 당하고 굶주림에 시달린다. 저자는 사회의 대표 격인 이사회가 빈민을 잠정적 범죄자 또는 영혼이 타락한 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러한 관념을 타파하고자 하였다. 역설적이게도 올리버는 구빈원 출신이면서도 고결한 도덕성을 지닌 인물이며, 저자는 도덕적으로 선한 거지를 보여줌으로써 신구빈법과 구빈원의 공식을 비틀어 놓았다. 경관들도 순찰 다니기를 꺼리던 당시 영국 뒷골목 세계가 배경이지만 뒷골목에 사는 올리버가 ‘신사’의 품성을 지켜 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카타르시스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신사를 국민의 이상으로 생각하는 영국인에게 자부심을 준 셈이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저자의 아버지는 낙천적 성격으로 돈의 씀씀이가 커서 항상 빚을 졌고 11세 당시 아버지가 채무변제 불이행으로 1년가량 감옥살이를 한다. 이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그는 구두약 공장에 취업하여 고된 노동을 경험한다. 아픈 기억이지만 작가로서는 작품의 배경 설정에 유익한 경험이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저자가 20대 중후반에 첫 번째로 발표한 문학작품이자 대표작이다.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에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면서 겪은 극심한 좌절감, 그 원인은 사회구조에 기인한다는 깨달음,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자각 등을 젊은 혈기로 과감하게 풀어나가며 천재적인 능력을 최초로 드러낸 작품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단순히 독자들에게 런던 빈민가의 소름 끼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사이크스의 잔혹한 낸시 살해 장면이나 올가미에 걸려 죽어가던 최후의 모습 등 무서움을 넘어선 공포스러운 내용으로 판매수익을 올리는 게 아니라, 독자가 ‘순수한 선(善)’을 배우게 하려는 데 있었다고 한다. 즉, 모든 힘든 환경은 극복할 수 있고 마침내는 승리한다는 ‘원칙’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으며, 이는 한편으로 문학작품이란 얼굴 찌푸릴 일 없이 순수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주류적 믿음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저자가 런던의 가장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범죄자들 세계를 소재로 다룬 또 하나의 이유는, 그로 인해 조성되는 공포심과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충격으로, 개선의 여지투성이인 현실에 대해 새로이 인식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 것이다. 그는 당시 영국의 사회문제는 지배계층의 무관심과 요지부동의 자세 때문이라 보아 가장 먼저 하층민의 거주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문제에 무관심한 지배계층에 대해 대단히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름답고 순수한 도덕적인 이야기보다는 최하층민의 생계문제가 결국은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자신들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두렵고 충격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귀족, 판사, 구빈원 감독관부터 소매치기, 장물아비와 매춘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사회계층의 등장인물을 크게 세 범주로 나누었다.

첫째 부류는 팽(Mr. Fang)과 같은 판사나 구빈원 감독자처럼 국가의 행정기관에 속해 정책을 실제 집행하는 사람들이고,

둘째 부류는 페이긴과 사이크스처럼 범죄자들이나 빈민들로 구성된 사회계층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고,

마지막 부류는 브라운로우(Mr. Brownlow)나 로즈(Rose Maylie)처럼 온갖 암담한 현실 속에서 선을 상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한 마디로 주인공 올리버를 이 세 가지 범주 중 어디에 위치시키는가로 귀결된다. 비극은 아니니 당연히 마지막 부류로 귀속되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나, 우리가 흔히 아무리 내용이 뻔한 드라마라도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맛에 중독되듯, 600여 페이지의 두꺼운 분량이지만 다음 이어질 내용의 궁금증을 참지 못해 연신 책장을 넘기는 독자 여러분을 스스로 대견해 하시리라 확신한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프로필 사진
유선종

현, 서울 우신고등학교 영어과 교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신촌 토스트마스터즈 클럽회장 역임
숙명여대 TESOL대학원 9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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