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젊음의 노트
스무 살. 저자는 한참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할 나이의 청년인데 가장이 되어야 했다. 고등교육을 받고 안정된 직장을 찾고 행복한 결혼으로 인생을 꿈꿀 나이인데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롯이 가장의 책임만 남았다면? 그것도 한참 일할 나이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아직도 부모님의 보호 아래 지낼 수 많은 또래들을 생각해보자 스무 살에 가장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런지.
뭐라도 해 볼 스무 살 나이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당장 병원비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마땅한 재원은 없고 친척들마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세보증금을 빼다가 급한 불은 껐지만 알코올성 치매인 아버지는 두 차례 더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진다. 남들보다 일찍 어른이 된 저자의 삶은 피폐해져만 간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주위로부터의 변변찮은 도움에 기대는 대신 적극적으로 자신을 구제하고 나선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얻는 것부터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걸려있는 조건도 한둘이 아니다. 군에 입대하면 눈높이 보호자로 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므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산업기능 요원으로 일하면서도 그는 영화인이 되고픈 자신의 꿈을 놓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책을 읽고 미래를 생각한다.
부양자가 사회적으로 안정적 지위를 획득하고 규칙적인 수입의 경제권을 확보한 상태라면, 돌봄의 문제는 크게 부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남들보다 수십 년 먼저 돌봄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불의의 사고로 근로 능력을 상실한 후 알코올성 치매가 찾아온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자 치료기관에 맡겨야 했다. 그의 사례를 통해 치매 난민이자 의료 약자는 곧 사회 보호제도의 하한선인 요양난민이 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비록 나이는 젊지만, 그는 이미 두 사람의 어른 몫을 해내고 있었다.
남들은 그를 효자라고 칭찬할지 모르지만, 그는 돌봄이 효자 한 사람의 덕목이 아닌 사회 문제라고 말하면서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는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청년층에 기본소득 얼마씩을 제공하자는 얘기가 정말 필요한 정책임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은 투표권을 의식한 포퓰리즘이 아니라 이 사회의 취약계층을 떠받쳐주는 국가와 사회의 책무이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기본 실천방안임을, 저자는 효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말하고 있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